한승헌(75) 변호사
자서전 첫 출간한 한승헌 변호사
8일 자서전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한겨레출판)의 출간을 알리는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책이 제일 조심스럽고 힘들었다”고 한승헌(75) 변호사는 말했다. “전에 법치주의에 관해서나 사회비판 글을 쓸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엔 나 자신의 얘기인데다 속마음까지 다 드러내야 하는 것이어서 자칫 자기자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지금까지 서른 권이 넘는 책을 냈다는 그가 ‘자서전’이라는 형식으로 낸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통속적인 자서전류에선 벗어나고자 했다. “자서전은 그것을 쓰는 사람 자신이 주인공이자 화자(話者)가 되는 글이다. 그런데 내 삶의 이야기로만 귀한 지면을 채울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내가 접했던 빛과 어둠의 인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불의와 고난의 시대에 의를 위해서 저항하고, 무도하게 탄압받고, 그러면서도 바른 세상을 향한 열정을 접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결국 나는 나 자신만을 말하는 화자일 수는 없었고, 이 세상을 바로잡고자 ‘사서 고생한 사람들’을 알리는 화자이어야 했다.”
올해 정초부터 5월 초까지 <한겨레>의 기획물 ‘길을 찾아서’에서‘한승헌의 사랑방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이 글들은 그러다 보니 “법적으로 말하자면, 자서전으로서의 필요적 기재사항들이 누락돼버렸다.” 바로 자신의 나고 자란 얘기는 물론 아내나 가족 얘기, 건강과 신앙 , 유머 얘기 등이 빠져버린 것이다. “책에선 연재할 때의 오류나 미흡한 점들도 보완했지만, 특히 ‘나 자신으로 돌아와서’라는 제목의 제9장은 그런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 쓴 것”이다.
그러면서도 언제나처럼“이렇게 쓸 자격이 있나”하는 자격지심 같은 것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항상 주전 멤버가 아닌, 어시스트를 주로 한, 그러나 “화려한 주역은 아닐지라도 누군가가 맡고 나서야 할 소중한 배역”쯤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 자신 두 차례의 옥살이와 고문까지 받아야 했던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시국사건 변호인 제1호’는 그런 이름을 얻게 한 자신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활약도 “박해받는 사람들을 외면했다가 나중에 가책을 받을까봐 떠맡게 된 것”이고 “베푼 것보다는 그들을 통해 얻은 것이 더 많다”는 겸양지덕을 잊은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책도 ‘세상 도우미의 노래’이자 ‘수비수의 비망록’이라 했다.
하지만 이번엔 “피할 수 없어서 알리는 것”이라는 ‘피알’을 좀 했다. “적어도 머리에 먹물이 좀 들어 있다는 지식인으로서, 특히 사회정의와 인권을 들먹이는 변호사로서 저 험난한 역사의 가시덤불을 헤치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동시대와 다음 후대를 위한 증언자와 기록자로서의 책무가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개인적 영역에 묻어놓고 겸손을 내세우기보다는 사적 경험과 사유의 공유가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차례’속에 즐비하게 등장하는 사건들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분명 한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1965년 남정현의 <분지> 필화사건부터 민청련,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을 거쳐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까지 현대사의 거의 모든 굵직한 사법사건 속에 변호인 또는 피고인으로 등장하는 그의 개인사가 또 하나의 한국 현대사였다.
민주세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그 잔혹한 시대”를 오히려 대견해 한 그는 지금을 “역진하는 수레바퀴”에 비유하면서 “전시의 싸움에서는 이기고, 평시의 ‘관리’에서는 실패한 결과가 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대아 앞에서 접어두었던 각자의 소아가 재발했기 때문이 아닐까.”집권세력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법치주의 얘기를 하는데, 근대적 의미의 법치란 위에서 아래로 지시하는 하향식 법치가 아니라 아래서 위로의 상향식 견제가 본질이다. 권력행사를 법 절차 제한규정에 따라 하라는 얘기다. 하향식 법치는 근대적 법치주의를 오해하고 있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독재자들일수록 그런 법치주의를 더 강조한다.”
한 변호사는 사건 위주로 된 자신의 자서전이 “비유컨대, 간선도로 위주로 달리며 찍어나가는데 바빠서 국도, 시골길, 오솔길, 골목길의 정감 넘치는 인간사를 제대로 그려내는 데는 모자람이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거기에는 “교훈이나 감동 또는 흥미를 위한 과장·각색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소신도 한몫했다.
하지만 “이 책은 무지막지한 폭력의 역사를 기록한 것임에도 , 마치 한 편의 우화를 읽고 난 뒤처럼 산뜻한 감동이 남는다. 참 재미있고 특별하다”고 한 강금실 변호사의 얘기처럼 결코 칙칙하거나 무미건조하지 않다. 시집과 수필집을 내고 문학단체활동까지 한 그의 탁월한 문사자질 덕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돋보이는 유머”와 유쾌한 여유와 겸손 덕이라는게 강 변호사 생각이다. 책 제목의 ‘한 변호사’는 한(韓) 변호사가 아니라 어느 변호사으로 읽어야 한다고 그는 굳이 설명했지만, 한(韓) 변호사로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느덧 칠순의 그는 분명 한 시대의 주역이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한겨레출판사 제공
하지만 “이 책은 무지막지한 폭력의 역사를 기록한 것임에도 , 마치 한 편의 우화를 읽고 난 뒤처럼 산뜻한 감동이 남는다. 참 재미있고 특별하다”고 한 강금실 변호사의 얘기처럼 결코 칙칙하거나 무미건조하지 않다. 시집과 수필집을 내고 문학단체활동까지 한 그의 탁월한 문사자질 덕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돋보이는 유머”와 유쾌한 여유와 겸손 덕이라는게 강 변호사 생각이다. 책 제목의 ‘한 변호사’는 한(韓) 변호사가 아니라 어느 변호사으로 읽어야 한다고 그는 굳이 설명했지만, 한(韓) 변호사로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느덧 칠순의 그는 분명 한 시대의 주역이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한겨레출판사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