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문화방송> 사장이 9일 낮 점심식사를 하려고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본관을 나서고 있다. 엄 사장과 이사 및 감사 등 문화방송 임원 8명은 7일 방송문화진흥회에 사표를 제출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문화방송 경영진 일괄사표
방문진 이사회, 경영진 압박 사표 끌어내
“방송섭정의 결과”…수리여부 오늘 결정
방문진 이사회, 경영진 압박 사표 끌어내
“방송섭정의 결과”…수리여부 오늘 결정
9일 오전 <문화방송>(MBC) 경영진의 일괄사표 제출 소식이 전해지자, 방송계는 크게 술렁거렸다. <한국방송> 사장 교체가 성공적으로 끝난 데 이어, 이번에는 문화방송 경영진도 교체해 친정부적 방송체제 구축을 마무리지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 탓이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내어 “엄기영 사장이 지난 7일 본인과 엠비시 이사 전원 및 감사의 재신임 여부를 묻기 위해 일괄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엄 사장이 지난 9월부터 추진해온 ‘뉴 엠비시 플랜’의 미흡한 점에 책임을 지고 자발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는 게 방문진 설명이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방문진 이사회는 지난 8월 출범 이후 경영진을 지속적으로 압박해왔다. 여당 쪽 이사들은 ‘뉴스데스크’ 등 주요 프로그램의 시청률 정체 또는 하락, 방만한 경영, 높은 임금 등의 문제를 잇따라 제기했다. 지난달 30일에는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이 직접 나서 “(엄 사장이) 가시적 성과가 없다면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했다. 스스로 검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4일에는 엄 사장이 방문진을 찾아가 김 이사장과 독대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문진의 한 야당 쪽 이사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외부세력의 압력이나 의중이 경영진 일괄사표에 작용한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방문진은 10일 이사회에 일괄사표 안건을 올릴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엄 사장을 비롯한 이사 전원의 사표가 수리되면 이사회는 곧바로 임시주총을 열어 새 경영진을 선임하게 된다. 김우룡 이사장은 “지금까지 누적된 책임이나 사내의 여러 가지 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장 교체 대신 일부 이사를 바꾸는 선에서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문화방송의 한 차장급 기자는 “현재 엠비시와 정권 간의 분위기가 크게 나쁘지 않다.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엄 사장을 교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이사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모든 경영진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과 한꺼번에 다 바꾸면 조직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의견이 (이사회 내부에) 다 있다”고 말했다. 비록 엄 사장이 유임된다고 해도, 문화방송이 방문진의 길들이기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화방송 내부에서는 일부 간부진 교체로 갈 경우, 그동안 여당 쪽 방문진 이사들의 눈밖에 났던 ‘뉴스데스크’와 ‘뉴스 후’를 책임지는 보도본부장과 ‘피디수첩’을 책임지는 제작본부장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한다. 문화방송의 한 부장급 피디는 “방문진은 무력해질 대로 무력해진 엄 사장을 통해 보도나 프로그램 개편, 노조와의 단체협약 개정 등을 진행하면서 방송 장악의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방문진의 야당 추천 이사들과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문화방송 노조는 성명에서 “<와이티엔>(YTN)에 이어 한국방송까지 정권 입맛대로 경영진이 교체된 것을 보더니, (문화방송도) 주주총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조바심인가”라며 “김우룡 이사장은 엠비시 직할통치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방문진의 야당 추천 이사인 정상모 이사는 “일괄 사표는 방문진의 섭정의 결과다. 내일(10일) 이사회에 참석해 논의하겠지만, 사표 수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