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봉호 타고 10만 동포 ‘귀국길’
북 선전도구-일 추방정책 산물
북 선전도구-일 추방정책 산물
재일동포 북송사업은 남북의 체제경쟁과 일본 정부의 묵인이 낳은 비극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시각이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다카야나기 도시오 호세이대 교수는 9일 도쿄 릿쿄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북한의 의도는 6.25 이후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당시 일본 정부의 ‘귀찮은 사람 내쫓기’의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빠 3명을 북에 보낸 다큐멘터리 작가 양영희씨는 심포지엄에서 “남과 북이 배구 대결을 벌였다면 일본에서 재일동포 사회는 두 편으로 나뉘어 럭비대결을 벌인 것”이라며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 김치가게도 각각 남북으로 나뉠 정도였다”고 말했다.
차별과 가난에 허덕이는 재일동포 사회에 북한은 일종의 탈출구였다. 총련은 최하층 재일동포를 우선적으로 찾아내 당시 한국보다 경제성장이 빨랐던 ‘사회주의 조국’으로 민족대이동을 적극 권유했다. 1958년 10월 당시 재일동포 생활보호대상자는 8만1천명으로 전체 동포의 13.3%를 차지했다. 일본 사회도 인도주의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북송사업을 지원하고 나섰다.
자민당은 물론 사회당, 공산당 의원들도 지원모임을 결성했다. <아시히신문> 1960년 2월26일치는 “귀국 희망자가 늘어난 것은 뭐라고 해도 ‘완전취업, 생활보장’이라고 전달된 북한의 매력 때문인 듯하다“라며 대대적인 특집기사를 싣는 등 대다수 일본 언론은 환영일색이었다. 일본 적십자사가 1959년 8월 북한 적십자사와 맺은 귀국사업 협정에서 귀국자와 가족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요구하지 않은 데서 일본 정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2006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차 핵실험 이후 북-일 연락선인 만경봉호의 일본내 입항을 금지하는 제재조처를 취함으로써 이산가족들의 고통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북한으로 건너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베이징을 경유해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비용 증가와 반입물품 제한에다 정신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최근 북한에서 ‘정착에 성공한 사람’의 연쇄 인터뷰를 게재해 북송사업의 정당성과 성과만을 선전할 뿐 그 문제점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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