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박일청(57)씨
방송인 박일청씨 사비털어 구연소설 CD 제작
중국 베이징의 한 음식점에서 지난 14일 만난 조선족 방송인 박일청(57·사진)씨는 전달해 줄 게 있다면서 시디(CD) 넉장을 건넸다.
<춘향전>(5시간25분), <심청전>(2시간53분), <흥부전>(2시간42분), <아리랑>(7시간36분). 모두 한국의 고전소설을 녹음한 것으로 18시간 36분 분량이다. 윤기가 흐르는데다 울대가 큰 그의 목소리로 녹음된 ‘구연소설’은 문장의 흐름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가 뚜렷하고 아래아와 이중자음 받침인 ‘ㄼ’ 등의 발음이 완벽하게 살아 있었다.
박씨는 <중국중앙방송>(CCTV) 산하 ‘중앙인민방송국’(CNR) 소속 아나운서로, 2007~08년 내리 중국 라디오·텔레비전 방송협회가 중국 전역에서 10명을 뽑아 시상한 ‘골든마이크상’(라디오방송 사회자·아나운서 부문)을 받았으며 올해는 10대 아나운서에 뽑힐 만큼 뛰어난 방송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런 탓에 조선족 사회뿐 아니라 중국 방송계에서도 두루 잘 알려진 명사다. 1970년 연변인민방송국 방송원으로 입사해 78년 베이징 중앙방송국으로 스카웃됐다. 39년 동안 진행해온 그의 조선어방송은 조선족들 사이에 붙박이로 인기가 높다.
“요즘 한국 전래의 전통문화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정조·효성·근면·신의 등이 그렇습니다. 특히 젊은이들한테 전통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94년부터 시작한 시디 작업은 틈틈이 녹음과 편집 과정을 거쳐 10여년이 지난 최근 완성했다. 한 시간에 200원씩하는 녹음실 사용료 등 사비 8만원을 털었다. 한시간 800원 하는 그의 보수에 비춰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거액이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협찬을 받았다는 귀띔이다.
“정년인 60살이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마지막 남은 내 모든 것을 바쳐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나마 다른 성우를 쓰지 않고 혼자서 녹음을 해 비용이 적게 든 셈입니다.”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도 시디를 전달했다는 그는 남쪽에도 저작권료와 무관하게 보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방송생활 40돌을 맞는 박씨는 새해에 <임꺽정> <황진이> <김삿갓> 등 인물 이야기를 완성하고 중국의 <삼국연의> <수호전>, 일본의 추리소설로 나아갈 것이라며 기염을 토했다.
“늙을수록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을 것이니, 한국에는 아마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겁니다.”
베이징/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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