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지 매도증서 등을 위조하는 수법으로 시가 1천억원대에 이르는 국유지 200여만평을 가로채려다 지난달 검찰에 적발된 토지사기단이 정교하게 위조한 매도증서. 법원 문서감정사들은 이들이 위조한 매도증서 11장에 대해 6차례나 ‘진본’ 판정을 내렸다. 연합
“아버지 땅” 문서위조 뒤 소송
감정사 매수 1천억대 땅 ‘꿀꺽’
법원 문서감정제도의 허점을 노린 ‘토지사기극’은 문서감정사마저 속이거나,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신수길)는 1일 김아무개(59)씨가 “해방 뒤 국가에 귀속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땅(시가 1천억원 상당)은 원래 선친 것”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확인소송에서 “민적부가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지난달 공문서변조 혐의 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김씨가 대규모 토지사기극을 꾸민 것은 2002년. ‘강두운평’이라는 일본인 소유였다가 국가에 귀속된 땅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서울 마포구청을 찾아가 민적부를 열람하는 척하면서 아버지 이름이 적힌 부분을 빼돌렸다. 1920년 아버지가 강두운평이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한 것처럼 정교하게 변조한 민적부를 구청에 되돌려놓은 뒤, 김씨 4남매는 고양·파주 일대 땅에 대해 6건의 소송을 냈다. 감쪽같이 속아 ‘진본’ 판정도…“감정기술 비과학적” 지적
이 가운데는 1심 법원과 문서감정사도 감쪽같이 속아넘어가 김씨의 손을 들어준 사건도 있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창씨개명 부분이 1980년도 이후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불리한 감정결과가 나오자, 김씨는 새로 문서감정을 신청한 뒤 문서감정사를 매수하는 수법을 썼다. 김씨는 법원의 감정명령을 받은 문서감정사 대신 실제 감정업무를 보던 김형영(66·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씨에게 “잘 봐달라”며 1천만원을 건넸고, “1920~30년께 작성된 문서”라는 유리한 감정결과를 얻어냈다. 지난달 의정부지검에서는 위조문서로 대법원에서 승소판결까지 받아낸, 대규모 토지사기단을 적발해 형사처벌했다. 이들의 사기수법도 김씨와 비슷했다. 이들은 6·25전쟁으로 등기부가 없어진 땅을 주로 노려, 마치 선친의 땅인 것처럼 토지매도증서나 호적부를 위조한 뒤 국가를 상대로 십여 건의 소송을 냈다. 그런데 법원 문서감정사들은 위조된 매도증서 11장에 대해 6차례나 ‘진본’ 판정을 내렸다. ‘강두운평’ 사건과 관련해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문서감정사 김형영씨는 이들에게도 2600만원을 받고 허위감정해준 혐의로 또 불구속기소됐다. 법원 문서감정사들조차 위조문서를 제대로 판별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법원의 한 관계자는 “먹으로 쓰인 문서의 작성연도를 감정하는 기술 자체가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감정문서를 일부 잘라내 펩신용액에 담근 뒤 문자에 함유된 먹의 아교성분이 용해되는 시간을 따져 작성연도를 확인하는 방법이 유일한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판사들도 문서감정 결과를 믿지 못해 참고하기만 할 뿐”이라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까 문서감정 결과를 결정적 증거로 채택해야 하는 사건에서는 판단이 어렵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뇌물받고 구속돼도 버젓이 ‘법원 문서감정사’ ‘유서대필 사건’ 감정 김형영씨
‘허위감정’은 증거 못찾아
%%990002%% 두 사건에 모두 끼어있는 문서감정사 김형영씨는 뇌물을 받고 감정을 해준 혐의로 이미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지만, 현재 4개 법원에 문서감정사로 등재돼 있는 것으로 3일 확인됐다. 김씨는 1991년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에서 “김기설씨의 유서 필적이 강씨의 필적과 유사하다”는 감정결과를 내놔, 강씨에게 유죄가 선고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인물이다. 그 뒤 그는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으로 있던 1980년, 92년과 98년 모두 세 차례 돈을 받고 문서를 허위감정해준 혐의가 드러나 각각 구속기소됐으나, 번번이 허위감정 부분은 무죄가 선고됐다. 돈을 받은 사실은 유죄로 인정되지만 허위감정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지난달 김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서울북부지법 황병하 부장판사는 “문서감정 방법이 워낙 객관적이지 못해 오류가 많기 때문에, 허위감정했다는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김씨가 감정결과를 왜곡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범죄전력 때문에 법원의 문서감정을 많이 맡지 못하게 되자, 법원에 등재된 감정인 송아무개(68)씨를 대신해 감정을 해주고 감정료를 반반씩 나눠가지기도 했다. 실제 감정은 김씨가 하고 송씨의 도장을 찍은 감정서를 법원에 제출했지만, 법원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김씨와 같은 문서감정사가 많다는 것은 법원 안팎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가소송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요주의 문서감정사 명단’까지 작성해둘 정도다. 한 판사는 “문서감정사들 중에 허위감정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런 사람들을 빼고 나면 실제로 문서감정을 맡길 수 있는 감정사의 수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며 “대안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감정사 매수 1천억대 땅 ‘꿀꺽’
법원 문서감정제도의 허점을 노린 ‘토지사기극’은 문서감정사마저 속이거나,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신수길)는 1일 김아무개(59)씨가 “해방 뒤 국가에 귀속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땅(시가 1천억원 상당)은 원래 선친 것”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확인소송에서 “민적부가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지난달 공문서변조 혐의 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김씨가 대규모 토지사기극을 꾸민 것은 2002년. ‘강두운평’이라는 일본인 소유였다가 국가에 귀속된 땅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서울 마포구청을 찾아가 민적부를 열람하는 척하면서 아버지 이름이 적힌 부분을 빼돌렸다. 1920년 아버지가 강두운평이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한 것처럼 정교하게 변조한 민적부를 구청에 되돌려놓은 뒤, 김씨 4남매는 고양·파주 일대 땅에 대해 6건의 소송을 냈다. 감쪽같이 속아 ‘진본’ 판정도…“감정기술 비과학적” 지적
이 가운데는 1심 법원과 문서감정사도 감쪽같이 속아넘어가 김씨의 손을 들어준 사건도 있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창씨개명 부분이 1980년도 이후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불리한 감정결과가 나오자, 김씨는 새로 문서감정을 신청한 뒤 문서감정사를 매수하는 수법을 썼다. 김씨는 법원의 감정명령을 받은 문서감정사 대신 실제 감정업무를 보던 김형영(66·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씨에게 “잘 봐달라”며 1천만원을 건넸고, “1920~30년께 작성된 문서”라는 유리한 감정결과를 얻어냈다. 지난달 의정부지검에서는 위조문서로 대법원에서 승소판결까지 받아낸, 대규모 토지사기단을 적발해 형사처벌했다. 이들의 사기수법도 김씨와 비슷했다. 이들은 6·25전쟁으로 등기부가 없어진 땅을 주로 노려, 마치 선친의 땅인 것처럼 토지매도증서나 호적부를 위조한 뒤 국가를 상대로 십여 건의 소송을 냈다. 그런데 법원 문서감정사들은 위조된 매도증서 11장에 대해 6차례나 ‘진본’ 판정을 내렸다. ‘강두운평’ 사건과 관련해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문서감정사 김형영씨는 이들에게도 2600만원을 받고 허위감정해준 혐의로 또 불구속기소됐다. 법원 문서감정사들조차 위조문서를 제대로 판별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법원의 한 관계자는 “먹으로 쓰인 문서의 작성연도를 감정하는 기술 자체가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감정문서를 일부 잘라내 펩신용액에 담근 뒤 문자에 함유된 먹의 아교성분이 용해되는 시간을 따져 작성연도를 확인하는 방법이 유일한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판사들도 문서감정 결과를 믿지 못해 참고하기만 할 뿐”이라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까 문서감정 결과를 결정적 증거로 채택해야 하는 사건에서는 판단이 어렵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뇌물받고 구속돼도 버젓이 ‘법원 문서감정사’ ‘유서대필 사건’ 감정 김형영씨
‘허위감정’은 증거 못찾아
%%990002%% 두 사건에 모두 끼어있는 문서감정사 김형영씨는 뇌물을 받고 감정을 해준 혐의로 이미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지만, 현재 4개 법원에 문서감정사로 등재돼 있는 것으로 3일 확인됐다. 김씨는 1991년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에서 “김기설씨의 유서 필적이 강씨의 필적과 유사하다”는 감정결과를 내놔, 강씨에게 유죄가 선고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인물이다. 그 뒤 그는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으로 있던 1980년, 92년과 98년 모두 세 차례 돈을 받고 문서를 허위감정해준 혐의가 드러나 각각 구속기소됐으나, 번번이 허위감정 부분은 무죄가 선고됐다. 돈을 받은 사실은 유죄로 인정되지만 허위감정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지난달 김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서울북부지법 황병하 부장판사는 “문서감정 방법이 워낙 객관적이지 못해 오류가 많기 때문에, 허위감정했다는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김씨가 감정결과를 왜곡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범죄전력 때문에 법원의 문서감정을 많이 맡지 못하게 되자, 법원에 등재된 감정인 송아무개(68)씨를 대신해 감정을 해주고 감정료를 반반씩 나눠가지기도 했다. 실제 감정은 김씨가 하고 송씨의 도장을 찍은 감정서를 법원에 제출했지만, 법원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김씨와 같은 문서감정사가 많다는 것은 법원 안팎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가소송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요주의 문서감정사 명단’까지 작성해둘 정도다. 한 판사는 “문서감정사들 중에 허위감정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런 사람들을 빼고 나면 실제로 문서감정을 맡길 수 있는 감정사의 수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며 “대안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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