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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땅이 나도 모르게 경매? 황당한 동명이인

등록 2005-06-03 20:22수정 2005-06-03 20:22

 법원의 잘못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대신 자신의 땅이 경매된 이아무개씨가 지난달 30일 오전 <한겨레> 취재진에게 경매 관련 서류를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법원의 잘못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대신 자신의 땅이 경매된 이아무개씨가 지난달 30일 오전 <한겨레> 취재진에게 경매 관련 서류를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법원, 강간범 손배소송때 이름같다고 엉뚱한 땅 가압류
주민번호 확인안해…낙찰까지 땅주인은 까마득히 몰라

이종수(가명·60·경기도 이천)씨는 지난달 20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고향 땅이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넘어갔다는 ‘황당한’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땅을 대신 부치던 형으로부터 “새로운 땅임자라는 사람이 나타나 ‘강간치상범의 땅을 낙찰받았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졸지에 땅을 잃고 강력범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된 그는 곧바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먼저 자신의 땅이었던 전북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논 744평의 등기부등본을 떼봤다. 1999년 가압류됐다가 2003년 ㅇ씨(여)가 새 주인이 돼 있었다. 새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원래 땅주인인데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상대 쪽에서 “당신이 이종수씨 맞느냐”고 여러 차례 되묻더니, “내가 아는 이종수씨 목소리가 아닌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튿날 ㅇ씨를 직접 만나 자신의 주민등록증, 주민등록 등·초본, 등기부등본을 보여줬다. ㅇ씨와 함께 온 법무사가 한참 서류를 뜯어보더니 “동명이인인 것 같다. 당신 땅이 다른 사람의 땅으로 오해돼 가압류되고 경매 처분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매 처분을 내렸던 전주지방법원을 찾았다. 여기서 김제에 사는 동명이인(53)이 1999년 성 범죄를 저질렀으며, 이에 대해 피해 여성이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땅을 가압류한 사실을 알았다. 이 땅은 2003년 1천여만원에 경매 처분돼 피해 여성의 소유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씨는 이런 상황에 대해 법원에서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법원에서 동명이인에게 경매 사실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법원의 강제경매 결정문 등에 채무자 주소로 돼 있는 ‘김제시 죽산면 ○○리’는 이씨가 ‘가보지도 않은 곳’이었다.

이에 대해 강제경매를 담당한 법원 직원은 “이미 가압류된 땅이어서 실제 주인이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경매를 담당한 판사(현 서울고법 근무)는 “당시 채무자가 실제 땅 소유자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경매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잘못 끼운 첫 단추인 가압류 결정 과정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관련 서류가 보존기한 3년이 지나 모두 폐기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의 땅을 되찾는 선에서 ‘조용히’ 마무리지으려 했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어차피 낙찰받은 여성도 피해자이고 담당했던 공무원도 피해를 입을까봐, 내가 되사는 형식으로 땅을 돌려받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새 땅주인과 연락이 끊겼다. 경매를 담당한 법원 직원 또한 근무지인 충남 서산까지 찾아갔지만 만날 수가 없었고, 되레 전화로 큰소리를 쳤다.”


이씨는 결국 지난주 담당 법원 직원과 ㅇ씨를 각각 직무유기와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씨는 “아무런 잘못 없이 땅을 빼앗겨 집과 고향을 오가며 시간과 돈을 낭비했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정석 대법원 공보관은 “토지의 등기부등본에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주거지 인근 동명이인의 땅을 당사자의 땅으로 오해해 일어난 일로 보인다”며 “가압류와 경매를 신청한 ㅇ씨와 이를 받아들인 법원의 명백한 잘못인 만큼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소송을 통해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그동안 겪은 고통은 누가 되돌려줄 수 있을까?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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