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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45일전 그날만큼 추운 날…가족들은 그저 울기만 했다

등록 2009-12-31 06:49수정 2009-12-31 09:59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 윤용헌씨의 부인 유영숙씨가 30일 낮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남편 영정을 어루만지며 흐느끼고 있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 윤용헌씨의 부인 유영숙씨가 30일 낮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남편 영정을 어루만지며 흐느끼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현장의 유족들

협상소식에 울고 타결소식에 또 울고
남편영정 바라보며 “어떻게 보내니…”
기자들이 빠져나간 뒤 점심…떡국이 나왔다
“가슴이 떨려서, 떨려서 못먹겠어…”
억울하게 죽었는데 장례식 치른다한들…떠밀려 하는 사과라 기쁘지만은 않아요”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4.2도를 기록한 30일, 용산은 지난 1월20일만큼이나 추웠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은 여전히 벽이 검게 그을린 채 그날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불탄 옥상 망루의 잔해도, 경찰 버스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은 용산참사 유가족 등은 345일 동안 이곳에서 그 기억을 품고 살아왔다.

유가족들은 이날도 눈물로 아침을 시작했다. 어젯밤,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은 식사 뒤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올해 안에 되기는 되는 거냐.” 누군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서로 부여안고 함께 울었다. 그 눈물의 부기가 채 빠지기도 전,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또다시 울었다.

권명숙(47)씨가 남편 고 이성수씨의 영정을 바라보며 “어떻게 보내니…”라는 말을 되뇌는 사이, 김영덕(55)씨와 전재숙(68)씨도 서로의 손을 꼭 쥔 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중얼거렸다. 신숙자(51)씨와 유영숙(48)씨는 손수건에 얼굴을 묻은 채 조용히 몸을 들썩거렸다. 이들 뒤로, 국화꽃으로 둘러싸인 다섯 영정 앞에 지난 1월20일 이후 한 번도 꺼지지 않은 향이 가만히 불타올랐다.


“고 한대성씨 처 신숙자입니다.” 신씨는 이날 낮 12시 참사 현장에서 열린 기자회견 내내 한 번도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했다. “1년이 다 돼도 해결이 안 되다가, 이렇게 갑자기….” 스피커 사이로 흘러나오는 신씨의 흐느낌이 남일당 주변으로 울려퍼졌다. 신씨는 “장례식을 치르지 않아 그런지, 애가 아직도 아빠가 죽은 걸 못 느낀다”며 “억울하게 죽었는데, 장례식을 치른다 한들 아빠가 눈을 못 감을 것 같다”고 가슴 아파했다. 검은 리본 달린 남편의 영정을 끌어안은 다섯 유가족들은 영정을 몇 번이고 손으로 쓰다듬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남일당을 가득 채웠던 기자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뒤 유가족들은 점심을 먹었다. 떡국이었다. “가슴이 떨려서, 떨려서 못 먹겠어….” 전재숙씨는 국물만 조금 들었다. 남편은 이제 보내겠지만, 남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던’ 둘째아들 이충연(36)씨는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을 해결 못 하고 아버지는 갑니다. 아버지는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목이 메어 점심을 제대로 못 챙긴 건 권명숙씨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사과를 원했는데 떠밀려 하는 사과라 기쁘지만은 않아요.” 군대 간 큰아들 상훈씨는 이 소식을 듣고는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랬나. 한 번도 그런 꿈 안 꿨는데 어제 엄마랑 아빠가 다정하게 마트에 가는 꿈을 꿨다”며 “8일에 나가겠다”고 했다. 권씨는 장례식을 치러 남편을 보내고, 남일당을 떠나고, 345일 함께했던 이들과 헤어지는 게 현실로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이곳을 떠나면, 아이를 생각해 전에 살던 경기 용인시 수지로 가야겠지만 남편의 기억이 남은 그곳에 가는 건 여전히 두렵다.

“크리스마스 때 예수님이 남일당에 오셨나 봐요. 한 해가 가기 전 남편을 보낼 수 있게 되다니….” 하지만 유영숙씨는 남편 죽음의 진상 규명을 위해 “지치지 않고 다시 한 걸음씩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다짐 속에서 유가족들은 장례식과 1주기 추모식, 그리고 진실 규명이 되는 그날을 다시 기다린다. 그곳을 여태껏 지켜온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천막이 보여주는 연대와 지지, 참사 당일 불타는 망루의 사진과 ‘용산참사 해결하라’는 손팻말들에 담긴 한과 함께.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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