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달째 월급이 끊긴 속에서도 동료를 위해 실업급여를 내놓은 성일갑(가운데) 선장과 울산 예인선 노조원들이 세밑에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 서로 손을 잡으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울산서 직장폐쇄로 5개월째 파업 생계위태
해고선장들 퇴직금·실업급여 눈물겨운 나눔
해고선장들 퇴직금·실업급여 눈물겨운 나눔
대형선박이 부두에 안전하게 배를 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예인선 선장 성일갑(51)씨는 16년 동안 오대륙을 오가는 원양어선을 타다가 1997년 울산항 예인선으로 옮겼다. 날마다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일하고 싶어서다. 그는 하루 평균 11~12시간을 항해사와 갑판원 등 동료 선원 3~4명과 함께 일한다. 선박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쉴새없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틀마다 야간근무를 한다. 휴일에 배가 들어오면 일을 하고 평일에 쉰다. 이렇게 일하고 그가 받는 연봉은 세금을 떼기 전 금액으로 4000여만원이다.
그는 “33년째 배를 타고 있는 선장의 급여치고는 너무 적다”며 회사 쪽에 심야·연장·휴일근로수당을 달라고 했지만 회사 쪽은 오히려 임금을 동결했다.
울산항 예인선박회사 3곳에서 일하는 선장과 선원 117명은 지난해 6월 처우개선을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사무실을 달라고 했다. 경영진은 “선장은 노동자가 아니라 관리자”라며 교섭을 회피했다.
노조는 합법적인 파업을 했고 회사 쪽은 직장폐쇄로 맞섰다. 회사는 이어 노조 탈퇴를 거부한 선장 16명에 대해 지난해 11월1일자로 해고해 버렸다. 이후 울산지법이 “선장도 노동자이며 회사 쪽은 성실하게 교섭에 응하라”며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부산노동위원회도 “해고된 선장들을 모두 복직시키라”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회사 쪽은 대법원까지 가겠다며 직장폐쇄를 풀지 않고 있다.
31일로 파업을 벌인 지가 147일째에 이른다. 선장과 선원들은 물론 가족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농성장에서 숙박하는 노조원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휴대전화를 끊기도 하고 하나뿐인 보험을 해약하기도 했다. 유치원과 학원을 끊는 가정도 생겼다. 가장들이 다섯 달째 월급을 가져오지 않자 아내들은 대형마트 계산원과 보험설계사 등으로 나섰다.
뜻밖에도 지난달 28일 노조 계좌로 1000만원이 들어왔다. 이아무개(52) 선장이 해고당하면서 받은 퇴직금 2100만원 가운데 1000만원을 보내온 것이다. 이씨는 나머지 퇴직금 1000만원을 아들 결혼식에 사용했다. 사흘 전인 25일에는 선장 13명이 “선원들이 더 고생한다”며 노동부로부터 받은 실업급여 120만~130만원씩을 노조에 내기도 했다. 이들은 최대 8개월치 법정 실업급여를 모두 내놓을 예정이다.
노조는 선장들이 낸 기금을 형편이 가장 어려운 노조원들한테 무이자로 빌려주기로 했다. 실업급여를 쾌척한 선장 성씨는 “내년에 휴학할 예정인 큰딸과 청소원으로 일을 나간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나보다 어려운 동료들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갑판원 전아무개(52)씨는 “다 같은 처지인데 선장님들이 기금을 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며 “빨리 모두 웃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장과 선원들은 새해에는 반드시 ‘배꾼’으로 다시 돌아가길 소망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가 77일 만에 마무리된 것이 그저 부러울 뿐이라는 게 이들의 말이다.
울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울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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