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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산중군자’의 포효 “긴장하라, 권력자여”

등록 2009-12-31 19:50수정 2010-01-01 13:08

우리 전통 민화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이미지의 호랑이들. 한결같이 친근하고 해학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우리 전통 민화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이미지의 호랑이들. 한결같이 친근하고 해학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올해의 동물] 호랑이




2010년 경인년 새해의 동물은 호랑이다. 호랑이해는 갑인(甲寅), 병인(丙寅), 무인(戊寅), 경인(庚寅), 임인(壬寅)의 순으로 육십갑자가 순환한다. 특히 경인년은 호랑이 중에서도 백호(白虎)에 해당된다. 백호는 서쪽을 지키는 신령으로 민속에서는 상상의 동물로 묘사한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 영물이다. 하지만 지도자가 악행을 저지르거나 인륜을 거스르는 일이 많아지면 광포해진다”, “백호가 나타나면 권력자는 몸을 낮추고 부자는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고 한다. “산전수전 겪은 호랑이가 세상 이치를 깨달으면 털이 희게 변한다”고 한다.

육당 최남선 선생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은 ‘호랑이 나라’로 전통문화 도처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이 바로 호랑이다. 산악 지역인 한반도는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산다 하여 ‘호랑이 나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인류의 대제전인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도 ‘호돌이’가 마스코트로 한국을 대표했다.

백호는 지도자가 악행을 저지르거나 인륜을 거스르면 광포해지는 영물이다. 산전수전 거쳐 세상이치 깨달으면 그제야 흰털을 갖게 된다


만봉 스님이 그린 불화 속 십이지신상 가운데 긴 장검을 든 호랑이 신상.  도판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만봉 스님이 그린 불화 속 십이지신상 가운데 긴 장검을 든 호랑이 신상. 도판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잘 발달되고 균형 잡힌 몸, 먹잇감 잡을 때의 빠른 몸놀림, 빼어난 지혜와 늠름한 기품의 호랑이는 산군자(山君子),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영웅(山中英雄)으로 불리는 백수의 왕이다. 재앙을 몰고 오는 포악한 맹수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영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한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예의 바른 동물로 대접받기도 하고, 골탕을 먹는 어리석은 동물로 전락하기도 했다. 우리 조상은 이런 호랑이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우러러보았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 속에는 대개 재미있는 호랑이 이야기들이 있다. 힘세고 날래지만 한없이 어리석어 사람에게는 물론 토끼나 여우, 까치 등에게 골탕먹는 우스꽝스러운 우화들이 많다. 반면, 신통력을 지닌 영물로 사람, 짐승으로 변신도 하면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의(義)를 지키고 약자와 효자, 의인(義人)을 도우며 부정함을 멀리하는 신비스런 동물로 등장하는 교훈적인 호랑이 이야기들도 전해진다.


서울올림픽 때는 호돌이로, 일상에선 각종 상표로 현대인들의 가슴속을 누비는 호랑이는 숲을 나와 도심 한가운데를 어슬렁거린다

설화에서 호랑이는 영웅, 특히 건국 시조의 수호자로 등장하고 있다.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아직 포대기 속에 싸여 있을 때이다. 그 아버지는 들에서 밭을 갈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밥을 갖다 주려고 어린아이를 나무 밑에 놓아 두었더니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호랑이는 견훤의 인물됨을 미리 알아보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묘사되어 있다. 왕건과 이성계 등 다른 건국 시조들의 설화에서도 호랑이의 적극적인 보호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호랑이는 효의 수호신 겸 후원자로도 자주 등장한다. 한성에 사는 박씨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친을 잃은 뒤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선친 묘에 참배하였다. 선친 묘로 가는 어느 날 박씨가 재를 넘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 박씨가 자신은 선친 묘에 가야 한다고 호통을 치자 호랑이가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박씨를 태운 호랑이는 선친 묘까지 와서 안전하게 박씨를 내려 주었다. 집으로 올 때도 이와 같이 하여 삼년 동안 계속되었다. 세월이 흘러 박씨가 죽게 되었는데, 그의 묘 앞에 호랑이가 한 마리 죽어 있어 집안 사람들이 그 옆에 묻어 주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물인 호랑이는 건국시조와 효의 수호자이며 잡귀를 물리친다. 우리 조상들은 좋아하면서도 싫어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우러러보았다


호랑이가 소나무 위 까치와 수작하는 모습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대작 <작호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랑이가 소나무 위 까치와 수작하는 모습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대작 <작호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살아 있는 호랑이가 절대적 힘과 용맹으로 잡귀를 물리치듯 죽어서 호랑이 신체 일부로도 능히 온갖 나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 호랑이 가죽, 뼈, 수염, 이빨, 발톱 등이 그것이다. 호랑이는 일상적으로 신체를 지켜주는 호신(護身)의 상징으로 믿어졌다. 정승은 호피를 가지고 있으면 ‘잡귀가 침범하지 못하고 벼슬자리를 길이 보전할 수 있다’고 하여 귀하게 여겼다. 호랑이 가죽인 호피는 무척 귀하고 값이 비쌌다. 그래서 실물 호피를 사용하기보다는 호피를 그리거나 수놓아서 장식하였다. 호피그림은 범 아니면 표범의 가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병풍그림이다. 호렵도가 대개 여덟 장이 연결되어서 한 장면을 이루는 연폭(連幅) 형식인 데 비해 호피그림은 주로 낱장 형식이다. 신부의 신행 가마 지붕에 호담(호랑이 가죽 무늬 담요)을 씌우는 풍속은 호담을 호피의 대용품 삼아 잡귀의 침범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호피그림은 장식 효과 뿐 아니라 벽사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지금 한국에서 자연생태 속의 호랑이를 실제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형성된 호랑이에 대한 관념은 지금도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랑이는 현대 도시와 백화점에서도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고 있다. 상품이나 회사의 등록상표 가운데 호랑이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용맹성·권위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동물상표로 활용하는 것이다. 호랑이 디자인의 경우 장난감류, 장신구, 의류, 기념품 등에 숱하다. 호랑이 상표는 스포츠, 기업, 주류 등과 관련이 많다. 호랑이는 숲을 나와 이제 마을로, 도시로 진출하여 거리 한가운데를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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