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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동망산길 사람들 “눈 치우기 너나 있나요”

등록 2010-01-07 20:48

7일 오전 서울 성북구 보문동6가와 종로구 숭인1동 경계인 동망산길에 행인들이 눈이 깔끔하게 치워진 언덕길을 오르내리고 있다.
7일 오전 서울 성북구 보문동6가와 종로구 숭인1동 경계인 동망산길에 행인들이 눈이 깔끔하게 치워진 언덕길을 오르내리고 있다.
경사 심한 서울 보문동6가-숭인1동 경계
‘오전엔 앞집, 오후는 뒷집’식 알아서 치워
“수십년 전통…규칙·순번 그런 것 없어요”
기습폭설이 내린 지 나흘째인 7일, 서울 시내 도로는 거의 정상화됐으나 대부분의 이면도로는 여전히 녹지 않은 눈으로 질척거렸다. 길가에는 모아 놓은 눈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 6가와 종로구 숭인1동의 경계인 동망산길 초입 삼거리도 마찬가지다. 차가 다니는 쪽은 질척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길만 쌓인 눈 사이로 좁게 나 있다.

그런데 좁아지는 길을 따라 주택가 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길바닥에 검은 아스팔트가 깨끗하게 드러났다. 눈은 길 양쪽 가장자리로 깨끗하게 밀려나 있었다. 그래서 제법 경사가 있는 길인데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자연스러웠다. 22년 동안 이곳에 살고 있는 김아무개(71)씨는 “눈이 온 첫날 주민들이 다 나와서 길을 치웠다”고 말했다.

눈을 치우다 이웃끼리 욕설에 주먹다짐까지 벌인 일이 있었다지만, 동망산길 사람들한테는 딴 나라 얘기다. 이곳 주민들은 눈이 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집앞을 치운다. 내친 김에 맞은편 집앞까지 눈을 쓸어준다.

주민 김성진(40)씨는 “폭설이 내린 날 출근하러 집을 나섰는데 새벽에 누군가가 길바닥을 한 번 쓴 흔적이 보였다”며 “퇴근길에도 길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어 어른들께 물어보니 동네 사람들이 하루종일 빗자루로 쓸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동네 사람들이 합심해서 눈을 잘 치우지만, 이들에게 규칙이나 순번은 없다. 누군가가 먼저 나와 빗자루로 길을 쓸면, 이 소리를 들은 다른 집 주민이 슬그머니 나와 함께 눈을 치운다. 앞집에서 오전에 눈을 치우고 들어가면 오후에는 뒷집에서 눈을 치운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이곳에서 40년간 철물가게를 운영한 박옥동(65)씨는 “동네가 가파르고 응달이라 한 번 눈이 오면 잘 녹지 않아 수십 년 전부터 이런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며 “걷다가 넘어지면 자기만 손해인데 조금만 신경쓰면 온 주민이 편하게 다닐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박씨는 아래쪽 삼거리를 내려다보며 “저기도 치워야 하는데 허리가 아파서 못하고 있다”며 웃었다.

글·사진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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