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9일 오후 노제를 지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현장] 용산참사 희생자 355일만에 장례식
관 얼싸안고 “여보” “아빠” “억울하고 분해 어떻게 가나”
유족들 하관식때 오열…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
관 얼싸안고 “여보” “아빠” “억울하고 분해 어떻게 가나”
유족들 하관식때 오열…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
[6보]
355일 동안 차가운 영안실 냉동고 안에 잠들어 있던 남편을 보내는 날, 하염없이 우는 부인들의 머리와 어깨 위로 새하얀 눈이 쏟아졌다.
9일 밤 8시30분께,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용산참사’로 숨진 다섯 명의 하관식이 시작됐다. 마침내 영원히 깃들 땅을 찾아든 남편·아버지를 앞에 두고 유족들은 통곡했다.
“아이고, 여보!” “현구 아빠!” “억울하고 분해서 어떻게 가나….” “아아,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해.” 고 윤용헌씨의 부인 유영숙씨는 “상필이(막내아들) 어떻게 할거냐”며 대답 없는 남편을 향해 목놓아 울었다.
고 양회성씨의 관이 가장 먼저 땅속에 내려졌고, 고 이성수씨의 관이, 그리고 이상림씨의 관이 차례로 내려갔다. 매섭게 추운 날씨에 차갑게 얼어버린 흙은 한 번의 삽질에 덩이째 들렸다. 무덤가를 둘러선 유족들은 마음마저 통째로 들려지는 듯 통곡했다. 얼어붙은 흙은 곡괭이로도 쉽사리 깨지지 않았다.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가 흐느끼자, 감옥에서 상을 치르기 위해 잠시 나온 둘째아들 이충연(37)씨는 어머니의 눈물을 닦고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이날 장례식은 밤 10시께가 되어 흙이 덮인 묘소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제주가 된 다섯 아들들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 이성수씨의 큰아들로, 제주인 이상흔씨는 군대에서 휴가를 받아 나와 아버지의 무덤에 술을 뿌렸다.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씨는 나이 순서대로 나란히 누웠다. 1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지내며 한 식구가 된 다섯 가족들은 남편과 아버지를 땅에 묻었다. 2009년 1월20일 아침 7시께,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망루에서 불타 숨진 지 355일만이다. 남양주/정유경기자edge@hani.co.kr
[5보]
“망루를 보아라 우리 모두가 불탔다”
3천여 시민 노제 참여…조시 낭독, ‘광야에서’ 합창
또 불 속에 넣을 수 없어 ‘분묘’…모란공원으로 이동 “저 집을 보아라 / 저기서 우리 모두가 불탔다 / 밀려나고 쫓겨나는 이 시대 모든 / 가난한 이들의 꿈이 불탔다.” 9일 오후 5시 15분께,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용산참사 장례식’의 노제가 시작됐다. 공동장례위원장인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사와 함께 시작된 노제에서, 송경동 시인은 조시 ‘저 슬픈 망루를 보라’를 낭독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운구차와 함께 행진해 온 시민 3천여명이 참여했다.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점점 거세졌고, 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건물에는 검은 근조 펼침막이 둘러져 있었다. 이어 연단에 오른 문정현 신부는 조사를 통해 “권력과 자본에 의해 진행되는 뉴타운 재개발, ‘돈 없는 자들은 살 수 없으면 나가라’고 강제 철거하는 이런 식의 재개발을 끝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노제에서 이곳까지 온 시민들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이제 정리하고 떠나는 건 다행이지만, 조만간 포크레인이 남편의 원혼이 서린 이 건물을 무너뜨리겠지요. 그리고 ‘언제 서민들이 살았냐’는 듯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설 겁니다.”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씨는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아 다행”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권씨는 “불덩이 속에서 돌아가신 분을 차마 불길에 다시 한번 모실 수 없었다”며 화장하지 않고 장례를 치르는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또 “어제 빈소로 찾아온 정운찬 총리의 사과를 고맙게 받았다. 약속대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재개발 정책을 고쳐 없는 사람을 내몰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이날 노제는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가 부르는 ‘광야에서’를 끝으로 저녁 6시20분께 마무리됐다. 이미 날이 어둑해진 가운데, 눈에 뒤덮인 3000여명의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광야에서’가 용산참사 현장에 울려 퍼졌다. 저녁 6시40분께 운구차와 버스 열 대에 나눠 탄 유가족·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은 하관식이 치러질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유경기자edge@hani.co.kr
[4보]
“불 속에서 죽은 우리, 1년만에 다시 왔소”
서울역 광장서 남일당까지 2시간 반 걸려 행진
경찰과 승강이도…망루있던 곳 바라보며 노제 “1년 만에 다시 왔네. 이제 편히 쉬소서. 어허허이야 어허허 헤이야” 곡소리와 소리없이 내리는 흰 눈이 2시간25분 동안 시내를 행진하는 이들과 함께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유가족들 머리와 어깨 위로 하얀 눈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9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 참여한 3천여명의 시민들(경찰 추산 2500명)은 이날 오후 2시50분께 ‘용산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앞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 앞머리에는 용산참사 다섯 희생자의 대형 영정을 실은 트럭과 운구차가 앞장섰고, 그 뒤로 다섯 유가족이 손에 손을 마주 잡고 도로 위를 걸었다. 이어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이종걸 민주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이강실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장례위원회’ 상임장례위원장이 ‘용산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뒤따랐다. 색색의 만장과 시민들도 그 길 위에 함께했다. 서울역~숙대 입구~삼각지~신용산역을 지나는 길은 불과 3㎞ 안팎이었으나, 행진하는 길을 좁히려는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면서 행진시간은 예상했던 1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영결식을 마치고 2시간25분에 이르는 행진 끝에, 이날 오후 5시15분께부터 ‘용산참사’ 현장에서 노제가 시작됐다.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노제에선 송경동 시인은 ‘저 슬픈 망루를 보라’라는 조시를, 문정현 신부는 조사를 낭독했다. 영결식부터 일정이 늦어진 탓에 저녁 6시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예정된 하관식은 오후 8시가 넘어서야 치러질 것을 보인다. 김민경 정유경 기자 salmat@hani.co.kr
[3보] “철거민들이 다시는 망루에 오르지 않게…”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 시민에 감사 인사
서울역광장 영결식 후 남일당 건물로 행진 “국민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설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저희와 같은 철거민들이 다시는 망루에 오르지 않게 재개발법을 바로잡아 주세요. 없는 사람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세요. 국민이 주신 은혜를 갚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거듭 고맙다는 말을 되뇌었다. 9일 낮 12시30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영결식에 모인 2천여명의 시민들에게 전씨는 유족들을 대표해 감사인사를 했다. 이틀 동안 조문을 받으며 수없이 감사인사와 통곡을 쏟아낸 탓에 이미 쇳소리가 된 목소리였다. 이날 전씨와 함께 무대에 올라 고개를 숙인 용산 유가족 16명 가운데는 용산재개발위원회 위원장이자 감옥에 갇혀 있는 이상림씨의 아들 충연(37)씨도 있었다.
“죽은 아비는 ‘도심 테러리스트’라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욕되어지고, 지옥 같은 불구덩이에서 뛰어내려 다리와 허리를 다친 아들은 감옥에 갔습니다. 어릴 적 못 먹고 자라 가뜩이나 작은 막내와 생이별하고, 아버지를 묻고 쩔뚝이며 기약 없이 차가운 감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모습을 보는 어미의 마음은….” 전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주최 쪽이 서울역 광장에 마련한 1200여 자리의 의자를 채우고도 모자라, 주변 계단까지 빽빽이 채운 2000여명의 시민들도 다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이강실·조희주 상임장례위원장의 개식사로 시작된 이날 행사에서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배은심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이 조사를 낭독했다. 유가족들에 앞서 조사를 낭독한 배은심 회장은 “죽는다고 해서 영원히 죽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가마니처럼 검은 옷을 둘러쓰고 대한민국 곳곳 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을 때 얼마나 귀 기울여 주었을까…. 당신들의 일이 내 일이요, 내 일이 당신들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용산 가족들을 볼 때마다 20년 전 내 모습같이 마음이 아픕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 4당 각 대표들도 조사를 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철거민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였고, 폭력 시위자가 아니라 가정을 지키려던 가장이었다”며 “서민의 꿈을 빼앗는 재개발법을 고쳐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노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이 공동장례위원장으로 자리를 지켰다. 영결식은 오후 2시50분께 가수 안치환씨가 조가로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부른 뒤 끝이 났다. 시민들은 분향 및 헌화가 이어졌고, 장례행렬은 노제를 위해 서울 중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용산참사 현장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정유경 김민경 기자 edge@hani.co.kr
[2보]
운구행렬 서울역광장 도착하자 영결식
장례위원 2천여명 참석…명동성당 들러 수배자 위로
남일당 건물 주변서 노제 후 모란공원에 안장 예정 9일 오전 10시20분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출발한 운구차와 유가족들이 낮 12시를 넘어 서울역 광장에 도착하면서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영결식’이 시작됐다. 고 이상림씨의 영정과 관이 무대 위에 마련된 분향소에 도착하면서 시작된 영결식은 2시간여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김태연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장례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이강실·조희주 상임장례위원장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 공동장례위원장 등 정치인과 시민장례위원 2천여명 이상이 참여했다. 장례위원회 쪽에서 준비한 1200여 자리는 영결식 시작 전에 이미 찼고, 서울역광장 주변 인도와 계단 등까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였다. 이 자리에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야 4당 대표들이 조사를 발표하고 안치환씨가 조가를 불렀다.
서울역광장 영결식장에 도착하기에 앞서 모든 유가족들은 서울 중구 명동성당을 방문해 박래군·이종회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과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 등 3명의 수배자들을 만나 서로 위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명동성당으로 들어가려는 유가족을 막아서면서 양쪽이 잠시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박래군 공동집행위원장 등 수배자들은 그동안 경찰 출두를 거부하며 명동성당에 머물러 왔으며, 장례식이 끝난 뒤 10일께 경찰에 자진 출두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영결식을 마친 뒤 장례행렬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까지 행진해 이곳에서 노제를 열 예정이다. 노제에선 송경동 시인의 조시와 용산참사 현장을 지켜온 문정현 신부의 조사가 낭독된다. 노제를 마친 후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으로 이동해 저녁 6시께엔 마지막으로 하관식이 열린다.
김민경기자 salmat@hani.co.kr
[1보] 용산참사 355일만에 장례식, 유족들 오열 관 나오자 “아이고, 애 아빠” “어떻게 이렇게 보내”
순천향대병원서 발인, 12시께 서울역광장서 영결식 발생 355일째, ‘용산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식이 9일 오전 발인과 함께 시작됐다. 이날 오전 9시께 고 이상림씨 등 희생자 5명의 주검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유가족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인됐다. 영하 7도의 추운 날씨에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발인식에는 이강실·조희주 상임장례위원장, 민주당 정세균 대표, 송영길·김진표 민주당 최고의원,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민노당 강기갑 대표, 문정현 신부 등 각계 인사와 시민 200여명이 참석했다. 유가족들은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다가 희생자들의 주검이 담긴 관이 차례로 장례식장 밖으로 나오자 “아이고, 애 아빠” “어떻게 이렇게 보내”라며 오열했다. 발인식에 이어 운구행렬은 순천향병원을 출발해 국립극장~장충단공원~퇴계로 구간 약 8km를 거쳐 낮 12시께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역광장에 도착할 예정이다.
‘범국민장’으로 치러지는 영결식은 시민 장례위원 수천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상임장례위원장의 개식사와 약력·경과보고, 조사, 조가, 진혼무, 유가족 인사, 분향, 헌화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유족과 참석자들은 영결식이 끝난 뒤인 오후 2시부터 용산참사 현장까지 약 3km 구간을 다시 행진해 이곳에서 송경동 시인의 조시, 문정현 신부의 조사, 진혼굿, 분향·헌화 순으로 노제를 치른다. 노제가 끝나면 이후 고 전태일 열사가 묻힌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동해 오후 6시께 안장될 예정이다.
한편, 경찰은 서울역광장과 노제 행사장 등 주변에 전·의경 67개 중대 4700여명을 배치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다. 경찰은 또 명동성당에 있는 박래군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등 용산참사 관련 수배자 3명이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외부로 나오면 즉시 검거할 방침이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고 양회성씨의 관이 가장 먼저 땅속에 내려졌고, 고 이성수씨의 관이, 그리고 이상림씨의 관이 차례로 내려갔다. 매섭게 추운 날씨에 차갑게 얼어버린 흙은 한 번의 삽질에 덩이째 들렸다. 무덤가를 둘러선 유족들은 마음마저 통째로 들려지는 듯 통곡했다. 얼어붙은 흙은 곡괭이로도 쉽사리 깨지지 않았다.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가 흐느끼자, 감옥에서 상을 치르기 위해 잠시 나온 둘째아들 이충연(37)씨는 어머니의 눈물을 닦고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이날 장례식은 밤 10시께가 되어 흙이 덮인 묘소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제주가 된 다섯 아들들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 이성수씨의 큰아들로, 제주인 이상흔씨는 군대에서 휴가를 받아 나와 아버지의 무덤에 술을 뿌렸다.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씨는 나이 순서대로 나란히 누웠다. 1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지내며 한 식구가 된 다섯 가족들은 남편과 아버지를 땅에 묻었다. 2009년 1월20일 아침 7시께,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망루에서 불타 숨진 지 355일만이다. 남양주/정유경기자edge@hani.co.kr
‘용산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9일 오후 노제를 지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또 불 속에 넣을 수 없어 ‘분묘’…모란공원으로 이동 “저 집을 보아라 / 저기서 우리 모두가 불탔다 / 밀려나고 쫓겨나는 이 시대 모든 / 가난한 이들의 꿈이 불탔다.” 9일 오후 5시 15분께,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용산참사 장례식’의 노제가 시작됐다. 공동장례위원장인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사와 함께 시작된 노제에서, 송경동 시인은 조시 ‘저 슬픈 망루를 보라’를 낭독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운구차와 함께 행진해 온 시민 3천여명이 참여했다.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점점 거세졌고, 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건물에는 검은 근조 펼침막이 둘러져 있었다. 이어 연단에 오른 문정현 신부는 조사를 통해 “권력과 자본에 의해 진행되는 뉴타운 재개발, ‘돈 없는 자들은 살 수 없으면 나가라’고 강제 철거하는 이런 식의 재개발을 끝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노제에서 이곳까지 온 시민들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이제 정리하고 떠나는 건 다행이지만, 조만간 포크레인이 남편의 원혼이 서린 이 건물을 무너뜨리겠지요. 그리고 ‘언제 서민들이 살았냐’는 듯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설 겁니다.”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씨는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아 다행”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권씨는 “불덩이 속에서 돌아가신 분을 차마 불길에 다시 한번 모실 수 없었다”며 화장하지 않고 장례를 치르는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또 “어제 빈소로 찾아온 정운찬 총리의 사과를 고맙게 받았다. 약속대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재개발 정책을 고쳐 없는 사람을 내몰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이날 노제는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가 부르는 ‘광야에서’를 끝으로 저녁 6시20분께 마무리됐다. 이미 날이 어둑해진 가운데, 눈에 뒤덮인 3000여명의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광야에서’가 용산참사 현장에 울려 퍼졌다. 저녁 6시40분께 운구차와 버스 열 대에 나눠 탄 유가족·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은 하관식이 치러질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유경기자edge@hani.co.kr
경찰과 승강이도…망루있던 곳 바라보며 노제 “1년 만에 다시 왔네. 이제 편히 쉬소서. 어허허이야 어허허 헤이야” 곡소리와 소리없이 내리는 흰 눈이 2시간25분 동안 시내를 행진하는 이들과 함께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유가족들 머리와 어깨 위로 하얀 눈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9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 참여한 3천여명의 시민들(경찰 추산 2500명)은 이날 오후 2시50분께 ‘용산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앞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 앞머리에는 용산참사 다섯 희생자의 대형 영정을 실은 트럭과 운구차가 앞장섰고, 그 뒤로 다섯 유가족이 손에 손을 마주 잡고 도로 위를 걸었다. 이어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이종걸 민주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이강실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장례위원회’ 상임장례위원장이 ‘용산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뒤따랐다. 색색의 만장과 시민들도 그 길 위에 함께했다. 서울역~숙대 입구~삼각지~신용산역을 지나는 길은 불과 3㎞ 안팎이었으나, 행진하는 길을 좁히려는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면서 행진시간은 예상했던 1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영결식을 마치고 2시간25분에 이르는 행진 끝에, 이날 오후 5시15분께부터 ‘용산참사’ 현장에서 노제가 시작됐다.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노제에선 송경동 시인은 ‘저 슬픈 망루를 보라’라는 조시를, 문정현 신부는 조사를 낭독했다. 영결식부터 일정이 늦어진 탓에 저녁 6시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예정된 하관식은 오후 8시가 넘어서야 치러질 것을 보인다. 김민경 정유경 기자 salmat@hani.co.kr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범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9일 고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현 씨(앞에서부터)의 대형영정과 참석자들이 서울역에서 부터 용산 남일당 참사현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3보] “철거민들이 다시는 망루에 오르지 않게…”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 시민에 감사 인사
서울역광장 영결식 후 남일당 건물로 행진 “국민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설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저희와 같은 철거민들이 다시는 망루에 오르지 않게 재개발법을 바로잡아 주세요. 없는 사람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세요. 국민이 주신 은혜를 갚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거듭 고맙다는 말을 되뇌었다. 9일 낮 12시30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영결식에 모인 2천여명의 시민들에게 전씨는 유족들을 대표해 감사인사를 했다. 이틀 동안 조문을 받으며 수없이 감사인사와 통곡을 쏟아낸 탓에 이미 쇳소리가 된 목소리였다. 이날 전씨와 함께 무대에 올라 고개를 숙인 용산 유가족 16명 가운데는 용산재개발위원회 위원장이자 감옥에 갇혀 있는 이상림씨의 아들 충연(37)씨도 있었다.
용산참사 355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범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율역 들머리에서 열리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죽은 아비는 ‘도심 테러리스트’라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욕되어지고, 지옥 같은 불구덩이에서 뛰어내려 다리와 허리를 다친 아들은 감옥에 갔습니다. 어릴 적 못 먹고 자라 가뜩이나 작은 막내와 생이별하고, 아버지를 묻고 쩔뚝이며 기약 없이 차가운 감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모습을 보는 어미의 마음은….” 전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주최 쪽이 서울역 광장에 마련한 1200여 자리의 의자를 채우고도 모자라, 주변 계단까지 빽빽이 채운 2000여명의 시민들도 다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이강실·조희주 상임장례위원장의 개식사로 시작된 이날 행사에서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배은심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이 조사를 낭독했다. 유가족들에 앞서 조사를 낭독한 배은심 회장은 “죽는다고 해서 영원히 죽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가마니처럼 검은 옷을 둘러쓰고 대한민국 곳곳 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을 때 얼마나 귀 기울여 주었을까…. 당신들의 일이 내 일이요, 내 일이 당신들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용산 가족들을 볼 때마다 20년 전 내 모습같이 마음이 아픕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 4당 각 대표들도 조사를 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철거민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였고, 폭력 시위자가 아니라 가정을 지키려던 가장이었다”며 “서민의 꿈을 빼앗는 재개발법을 고쳐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노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이 공동장례위원장으로 자리를 지켰다. 영결식은 오후 2시50분께 가수 안치환씨가 조가로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부른 뒤 끝이 났다. 시민들은 분향 및 헌화가 이어졌고, 장례행렬은 노제를 위해 서울 중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용산참사 현장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정유경 김민경 기자 edge@hani.co.kr
용산참사 355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범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울역 들머리에서 열리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남일당 건물 주변서 노제 후 모란공원에 안장 예정 9일 오전 10시20분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출발한 운구차와 유가족들이 낮 12시를 넘어 서울역 광장에 도착하면서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영결식’이 시작됐다. 고 이상림씨의 영정과 관이 무대 위에 마련된 분향소에 도착하면서 시작된 영결식은 2시간여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김태연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장례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이강실·조희주 상임장례위원장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 공동장례위원장 등 정치인과 시민장례위원 2천여명 이상이 참여했다. 장례위원회 쪽에서 준비한 1200여 자리는 영결식 시작 전에 이미 찼고, 서울역광장 주변 인도와 계단 등까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였다. 이 자리에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야 4당 대표들이 조사를 발표하고 안치환씨가 조가를 불렀다.
용산참사 355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범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울역 들머리에서 열리고 있다. 한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용산참사 355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범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울역 들머리에서 열리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용산참사 355일만에 자례식이 치뤄진 9일 오전 서울역광장 영결식장에 도착하기에 앞서 모든 유가족들은 서울 중구 명동성당을 방문해 박래군·이종회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과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등 3명의 수배자들을 만나 서로 위로하는 자리를 가졌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1보] 용산참사 355일만에 장례식, 유족들 오열 관 나오자 “아이고, 애 아빠” “어떻게 이렇게 보내”
순천향대병원서 발인, 12시께 서울역광장서 영결식 발생 355일째, ‘용산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식이 9일 오전 발인과 함께 시작됐다. 이날 오전 9시께 고 이상림씨 등 희생자 5명의 주검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유가족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인됐다. 영하 7도의 추운 날씨에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발인식에는 이강실·조희주 상임장례위원장, 민주당 정세균 대표, 송영길·김진표 민주당 최고의원,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민노당 강기갑 대표, 문정현 신부 등 각계 인사와 시민 200여명이 참석했다. 유가족들은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다가 희생자들의 주검이 담긴 관이 차례로 장례식장 밖으로 나오자 “아이고, 애 아빠” “어떻게 이렇게 보내”라며 오열했다. 발인식에 이어 운구행렬은 순천향병원을 출발해 국립극장~장충단공원~퇴계로 구간 약 8km를 거쳐 낮 12시께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역광장에 도착할 예정이다.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발인식이 9일 서울 순천향대병원에서 진행됐다. 발인식 후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장례식은 서울역 광장에서 영결식 후 용산참사 현장에서 노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