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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7년만에 누명 벗었지만 “용서 못한다”

등록 2010-01-14 19:21수정 2010-01-14 23:17

 최양준씨가 14일 간첩죄 등에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 앞에서 “앞으로 다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최양준씨가 14일 간첩죄 등에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 앞에서 “앞으로 다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최양준씨 재심서 무죄 선고
일본서 여권 위조죄가 한국서 간첩죄로 둔갑

최양준(71)씨는 1939년 5월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 뒤 상경해 고모부 밑에서 목공일을 배웠다. 결혼 뒤 목수로 살던 최씨는 ‘일본에서 일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말에 1975년 한 달 짜리 비자를 받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도 최씨의 목공기술은 통했고, 체류기간이 만료되자 일하면서 알게 된 한 일본인한테 ‘모리미쯔 카즈오’라는 이름의 여권을 받아 사진을 바꿨다.

돈을 조금 더 벌고 싶었던 최씨의 ‘실수’는 남은 인생을 통째로 빼앗았다. 일본산 전자계산기 등을 사서 한국에 드나들던 최씨를 이웃 일본인이 신고했고,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여권법 위반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한국에 강제송환됐다.

1982년 11월 김해공항에 내리자 부산 지역 보안대 요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삼일공사’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의 지하 조사실로 들어가자 바닥에 깔린 빨간 카펫이 보였다. 수사관들은 “이게 왜 빨간 줄 아냐, 피로 물든 거다”라고 겁을 줬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문이 시작됐다. 성기와 양쪽 엄지손가락에 전기가 흘렀다. 수사관이 밥을 떠먹여 줄 정도가 된 뒤 그는 “간첩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산 넘고 배 타고 북에 가서 김일성도 만났다”고 했다.

그는 “죽기 전에 가족 얼굴이라도 보자”는 생각에 어깨 너비의 화장실 창문으로 빠져나가 맨손으로 철조망 담장을 넘기도 했다. 민가의 화장실로 숨어들었지만 피범벅인 채로 군복을 입은 그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걸어서 지하 조사실로 돌아갔다. 1983년 3월 서울형사지방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등)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게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했다. 항소와 상고도 기각됐다. 9년을 복역한 그는 1991년 석가탄신일에 가석방됐다.

지난해 7월 그는 법원에 재심 신청을 했고,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재판장 여상원)는 최씨의 무죄를 선고했다.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한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선고 뒤 최씨는 방청석에 있던 부인과 아들들 앞에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최씨는 “끔찍했던 지난일을 생각하면, 진실을 외면했던 수사관과 검사, 판사를 용서할 수가 없다”며 울었다.

글·사진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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