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해 잠든 차량 주인의 동의 없이 동승자가 차를 몰다 사고를 냈다면 ‘도난 상태에서의 사고’로 봐 차 주인에게 보험금이 지급돼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홍보도우미로 일하던 ㅇ씨(29)는 2002년 12월 게임쇼 홍보 일을 마치고 새벽 1시까지 뒤풀이를 했다. 만취한 ㅇ씨는 중간에 합석해 함께 술을 마신 친구 ㅁ씨와 함께 집에 가려고 자신의 차에 올랐고, 술을 마시지 않은 게임쇼 아르바이트생 ㄱ씨에게 운전을 부탁한 뒤 차량 뒷좌석에서 곧바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조수석에 탄 ㅁ씨는 중간에 “내가 운전하겠다”며 ㄱ씨를 내려주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만취 상태였던 ㅁ씨는 결국 3건의 뺑소니 추돌사고를 냈고, 차 안에서 잠을 자던 ㅇ씨는 사지가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ㅇ씨가 운전해 사고를 냈다”는 ㅁ씨의 신고에 보험사는 일단 ㅇ씨에게 5300여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ㅁ씨의 운전 사실이 밝혀지자 보험사는 “친구의 운전으로 인한 사고는 지급조건이 안 된다”며 보험금을 회수했고, ㅇ씨는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고법 민사6부(재판장 윤재윤)는 “보험사는 ㅇ씨에게 4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ㅇ씨가 술을 마시지 않은 ㄱ씨에게 운전을 부탁한 것에 비춰, 뒷좌석에서 잠들지 않았으면 술에 취한 ㅁ씨의 운전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사건은 ‘도난 중 사고’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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