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파트를 두고 오랫동안 경쟁을 벌였던 ㅇ슈퍼마켓 최정인(오른쪽)씨와 ㅅ슈퍼마켓 권승호(왼쪽)씨가 권씨의 가게 앞에서 서로 격려한다는 뜻으로 손을 마주잡고 있다.
울산 한 아파트 주변 4곳
중형마트 물량 공세에
공동 할인판매 등 ‘맞불’
중형마트 물량 공세에
공동 할인판매 등 ‘맞불’
21일 울산 월드컵경기장 맞은편 옥현 주공3단지 아파트 앞 ㅅ슈퍼마켓. 상품을 할인해 팔고 구매금액에 따라 사은품을 지급한다는 큼직한 펼침막이 내걸렸다. 이 가게뿐 아니라 이 아파트 주변에서 영업하는 다른 슈퍼마켓 3곳에도 같은 펼침막이 내걸렸다. ㅅ슈퍼마켓 주인 권승호(42)씨는 “동네슈퍼로서는 할인 판매가 매우 어렵다”면서도 “덩치가 큰 상대와 경쟁하려니 어쩔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 동네슈퍼 4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 1400여 가구를 두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쳐도 인사도 없이 돌아섰다. ‘공동의 적’이 없던 시절이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을 막기 위해 동네슈퍼 주인들이 주민들의 서명을 받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도 남의 일이려니 했다.
그러다가 지난달 중순께 올 것이 왔다. 기업형 슈퍼마켓은 아니었지만 중형 슈퍼마켓이 이 동네에 들어서 일주일이 멀다고 할인행사를 열고 사은품을 지급하는 등 물량 공세를 폈다. 각 가게별로 할인행사 등 자구책을 마련했으나 물품 자체를 싸게 구입하는 중형마트와 경쟁하기는 어려웠다.
이들이 연합전선을 구성한 뒤 상품 공급업체에 가격을 낮춰 달라고 집단으로 요구했다. 한 공급업체가 거부하면 주문을 집단적으로 다른 공급업체로 돌렸다. 이렇게 4곳의 가게가 물건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싸게 사들여 중형마트의 할인행사와 같은 기간에 판매가격 경쟁에 나섰다. 1차로 23일까지 전 품목 할인판매를 하고 있는데, 4곳의 가게가 동시에 전 품목 할인을 내건 것은 2002년 이 곳에 아파트와 가게들이 들어선 뒤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은 동네에 들어서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을 막기 위해 26일 신울산슈퍼마켓협동조합에도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ㅇ슈퍼마켓 주인 최정인(49)씨는 “이제 동네슈퍼들이 거대한 공룡들에 맞서 살아남으려면 함께 싸우는 동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글·사진 김광수 기자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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