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국적, 그 선택의 자유와 이탈의 자유

등록 2005-06-07 11:56수정 2005-06-07 11:56

"국민은 매일매일의 국민투표다.

" 19세기 프랑스 국민국가 이데올로그인 에르네스트 르낭(1823-1892)은 보불전쟁(1871-72)의 패배로 프랑스 전체가 침체 일로를 걷고 있던 1882년 소르본대학에서 한연설 '국민이란 무엇인가'에서 이 말을 들고 나왔다.

이에 의하면, 프랑스라는 국민국가의 절대 기반인 '프랑스 국민'은 종족과 언어와 종교와 이익공동체와 지리조차 초월한다.

그가 어디에 살며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건, 흑인이건 백인이건 황인종이건, 프랑스 국민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프랑스 국민이 될 수 있다고 르낭은 설파한다.

그래서 '프랑스 국민'은 태어날 때부터 절대 불변으로 고정된 게 아니라, 매일국민투표로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르낭은 프랑스 국민이 되는 조건을 이야기했으나, 그 반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즉, 자유 의지로 프랑스 국민이 될 수 있다면,프랑스 국민이 되고 싶지 않으면 언제든 그 국적을 버릴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

프랑스 국민이고 싶은 선택의 폭은 얼마든지 개방했음에도, 그것에서 벗어날 출구를 완전히 봉쇄해 버린 르낭의 민족주의가 곧 프랑스 제국주의의 또 다른 버전임이 여기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대한민국 법 체계, 특히 헌법이 일본의 그것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두 나라 헌법에는 무시 못할 차이가 곳곳에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국적 관련 조항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이와 관련된 조항이 어디에도 없다.

이에대해서는 그 하위인 국적법이란 법률로 밀어내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국적 취득자인 '국민'의 권리와 의무만 나열해 본말이 뒤바뀐 느낌을 준다.

더 큰 문제는 하위 법률인 국적법(일부개정 2004.1.20 법률 제07075호) 어디에도 국적 이탈의 자유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외국인'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반대로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할 수 있는 자유도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국적법 어디에도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대한민국 국민이 국적을 이탈할 수 있는 자유를 규정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국적이탈의 자유를 헌법이나 법률로 명쾌하게 보장한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반면 일본의 경우, 1945년 11월 3일에 공포되고, 이듬해 5월 3일에 시행된 '일본국헌법'에 국적 이탈의 자유를 명시했다.

이 헌법 제22조 '거주ㆍ이전 및 직업선택의 자유, 외국 이주 및 국적 이탈의 자유' 중 제2항은 "누구도 외국으로 이주하거나, 또는 국적을 이탈할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何人も, 外國に移住し, 又は國籍を離脫する自由を侵されない)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다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은 대체로 국적 이탈의 자유를 보장한다.

쉽게 말해, 국가를 버릴 수 있는 자유도 헌법으로 보장한다.

그것은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권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역사적 조건이나 경험에서 한국은 독특한면이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이나 국적에 대한 조항에서 대한민국은 여타 OECD회원국에 비해 '억압적'인 측면이 강한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적법은 혈통주의,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속인주의'를 고수한다.

다시 말해 그가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곳에서 어떠한 종교적 신념을 지닌채 살고 있건, 대한민국 피가 섞여 있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강제 편입하고 있다.

현행 대한민국 국적법에서 출생과 관련한 거의 유일한 예외 조항은 "부모가 모두 분명하지 아니한 때 또는 국적이 없는 때에는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이거나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기아는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가 된다.

이에 의하면 고아로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버려진 아이만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자격인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된다.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현행 국적 조항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은 외국인에대해서는 "품행이 방정한 자"라는 등의 모호한 기준이 적용돼 엄청난 장벽으로 작용하는 한편, 반대로 '병역기피' 등의 이유로 대한민국 국적으로 포기하고자 하는 자에 대해서는 갖은 사회적 지탄을 가하게 하고 있다.

새 국적법 발효에 따라 종래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옛 대한민국 국민'들의명단을 대한민국 정부가 7일 관보에 실명 공개한 것은 현재의 대한민국에는 '국적이탈의 자유'가 법률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서울/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