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수 최상돈(44)씨
4년째 음악순례하는 제주 민중가수 최상돈씨
무등이왓 등 현장 찾아 80여차례 공연
“후세대 빚 갚으려…이제 생활의 일부”
무등이왓 등 현장 찾아 80여차례 공연
“후세대 빚 갚으려…이제 생활의 일부”
“억새밭 속에서 우리는 싸웠다/ 그 질긴 뿌리로 이어진/ 제주민들의 연대는/ 하얀 봉화 같은 꽃으로 타올랐다/ …/ 해가 뜨면 다시 돋아나는 해바라기 꽃처럼/ 온 벌판을 태워도 기어이 다시 태어나는 진초록 억새처럼.”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이른바 ‘무등이왓’ 터. 김경훈 시인의 ‘억새와 해바라기’라는 시에 곡을 붙여, 제주도의 민중가수 최상돈(44·사진)씨가 기타를 잡고 나지막하지만 숙연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함께한 순례자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마침 이날은 며칠 동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한라산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였다. 최씨는 대나무 숲으로 이어진 좁은 올레(오솔길)를 따라 난 무등이왓을 비롯 동광리 지역에 있는 헛묘, 삼밭구석 등 ‘4·3’을 상징하는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기타를 잡았다. 그가 동광리를 순례지로 선택한 것은 1949년 1월 이맘때 토벌대에 쫓기던 주민들이 이곳에서 잡히거나 학살되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부터 음악활동을 하며 4·3을 공부하다 졸업 뒤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노래패 ‘사월’을 만들어 4·3 노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그가 4·3음악순례에 나선 것은 2006년 2월. “4·3 후세대로서 원혼들에게 무엇인가 진 빚을 갚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애초 4·3 60돌을 맞는 2008년 4월까지 60회를 계획했으나 내 생활의 일부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하게 됐지요.” 이렇게 시작한 그의 4·3음악순례는 지금까지 80여차례 계속됐다. 다음달이면 만 4년을 맞게 된다. 그의 순례길에는 많게는 20명 이상이 참여하기도 하지만 적을 때는 단둘이 갈 때도 있다고 한다. 순례길은 언제나 시낭송과 노래공연으로 이뤄진다. 순례자들은 시를 읽고, 그는 노래한다. “처음에는 찾아간 곳에 대한 노래만 불렀는데, 이제는 뜻만 맞으면 부릅니다. 현장에서 만든 노래인데 현장에서 불러야 한다는 생각에서죠.” 늘 헝클어진 머리와 턱수염을 제대로 깎지 않은 채 기타 하나만 달랑 멘 채 떠나는 그의 4·3음악순례가 언제 끝날지 이제는 자신도 모른다. “그냥 기회가 닿는 대로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으로나마 당시 가신 님들의 영혼을 위로하면서, 제주땅이 진정 평화의 땅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고자 합니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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