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우수 중소기업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구직자들이 채용 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정부, ‘GDP 대안’ 국민행복지수 논의 중단
MB, 지난해 고용·주거 아우른 지표 개발키로
청년실업·사교육비 등 반영 땐 ‘나쁜 성적표’
MB, 지난해 고용·주거 아우른 지표 개발키로
청년실업·사교육비 등 반영 땐 ‘나쁜 성적표’
정부가 지난해 국민의 ‘삶의 질’을 파악할 수 있는 ‘국민행복지수’를 개발하겠다고 한 약속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행복지수 개발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통계 역량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의욕만 앞세운 결과다.
■ 중장기 과제로 떠넘겨진 행복지수 24일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등 정부 관련 부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가 애초 2009년 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한 국민행복지수 개발은 이미 중장기 과제로 넘겨져 관련 논의가 사실상 중단됐다. 행복지수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인실 통계청장은 “분야별로 어떤 지표에 가중치를 둘 것인지 등을 두고서 정부 안팎에서 다양한 견해가 쏟아졌다”며 “장기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여서 당장 지수화하기는 어려운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재정부 관계자도 “행복지수에 대해선 국제적 기준이 없어서 정부가 지수를 내는 것이 적절한지 등을 신중하게 검토해 중장기 과제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에서도 국민행복지수 개발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실종됐다. 국정기획수석실에서는 “지난해 가을 경제수석실로 업무를 넘겼다”고 하고, 경제수석실에서는 “국정기획수석실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서로 떠넘기고 있다. 발표만 떠들썩하게 해놓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소득·고용·교육·주거·안전 등 5대 민생 분야를 아우르는 국민행복지수를 연내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통계청이 건강·노동·교육·주택·안전·가족·환경·사회통합·문화·여가·소득·소비 등 10개 분야를 정한 뒤, 이를 지수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 삶의 질 측정 꺼리는 분위기도 역력 정부가 지난해 국민행복지수 개발에 착수했던 것은 국내총생산(GDP)과 실제 국민들의 행복도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나라 안팎의 여론이 높아지면서다. 예컨대 실제보다 낮게 측정되는 실업률 대신 고용률에 더 가중치를 두는 지수를 만들면, 국민들의 일자리 만족도를 훨씬 더 실상에 가깝게 파악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지난해 10월엔 ‘새로운 경제발전 지표’를 주제로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포럼이 부산에서 열리면서, 행복지수 개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의지도 한층 확고해졌다. 외형적 성장이 곧바로 국민의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일찌감치 학습한 선진국과 보조를 맞추려 한 것이다. 정부로선 친서민·중도실용 정책 기조를 홍보하는 데도 손색이 없었다.
그런데도 행복지수 개발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우선 통계별 가중치 부여 등을 싸고 정부 내부 혹은 각 분야 전문가 그룹 안에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한 예로 주택가격이 낮아야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주택가격이 높아야 주거의 질이 높아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며 “무리해서 지수를 내더라도 사후적 논쟁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털어놨다.
행복지수 산출 자체를 꺼리는 정부 일각의 분위기도 영향을 끼쳤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경제 관료들은 행복지수를 개발해 매년 측정·발표할 경우 성과가 안 좋게 비칠까봐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행복지수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청년 실업이나 사교육비 지출액 등이 반영되는데, 이 경우 정부로선 좋은 성적표를 받기 어렵다.
기초 통계의 부족도 만만치 않은 문제로 제기됐다. 환경부는 2001년부터 환경오염 비용을 고려한 ‘녹색지디피(GDP)’ 개발작업을 추진해왔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소득 불평등도가 점차 심화되는 등 양극화가 심각한 한국에서 행복지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정부가 지수 개발에 적극 나서야 ‘성장 일변도’ 정책의 우선순위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기초 통계의 부족도 만만치 않은 문제로 제기됐다. 환경부는 2001년부터 환경오염 비용을 고려한 ‘녹색지디피(GDP)’ 개발작업을 추진해왔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소득 불평등도가 점차 심화되는 등 양극화가 심각한 한국에서 행복지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정부가 지수 개발에 적극 나서야 ‘성장 일변도’ 정책의 우선순위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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