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이사람] 함께 밭갈던 소, 이젠 식탁위 고기로만…

등록 2010-01-25 18:40수정 2010-01-27 14:03

소설가 이순원(52)씨
소설가 이순원(52)씨
새 장편소설 ‘워낭’ 펴낸 이순원씨
고향마을 우추리 무대 ‘소 이야기’ 그려
“소들이 동물사료 먹는 세태 안타까워”




소설가 이순원(52·사진)씨는 강원도 강릉이 고향이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톨게이트에서 500미터, 대관령 아래쪽 산골마을, 우추리다. 소가 난다 해서 ‘우출’, 이를 연음하여 우추리다.

“제 고향은 깊숙한 시골인지라 제가 대학 입학하던 무렵에야 전기가 들어올 정도였죠. 유치원생 아이들이 지금도 소를 몰고 다니지요.”

그가 3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워낭>을 내놓았다. 우추리의 차무집 집안의 외양간에서 살았던 소 12대의 이야기다. 많은 부분이 자전적인데, 밭갈이 농사로 “생업을 함께하며” 살아온 소들과 그들과 공존했던 인간들의 연대기랄까.

차무집의 첫 소 ‘흰별’에게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1886년 어쩌다 동네에 노름사건이 나는 바람에 애송아지 하나가 새끼를 낳아주고 떠날 운명의 그릿소가 되어 차무집 젊은 부부의 외양간으로 온다. 그 그릿소가 낳아준 새끼가 흰별이다. 흰별이 미륵(열두번째 새끼)을 낳고, 미륵이 버들(네번째 새끼)을 낳고, 버들이 화둥불(세번째 새끼)을 낳는다. 이렇게 차무집 흰별소 할머니의 자손들은 콩죽소, 외뿔소로 이어졌으되, 그들 ‘일하는 소’ 가계는 차무집 외양간에서 ‘반제기’를 마지막으로 ‘절손’된다. 경운기가 소 대신 밭을 갈고 소는 이제 일꾼이 아니라 ‘고기’로서만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워낭>이 문제적인 건 그 직접 화자가 소들이란 것이다. 작가의 유년을 함께했던 ‘검은눈’을 비롯한 소들이 말을 하고, 그들을 키우며 공생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의 말과 사람의 말이 뒤섞이고 때로 그들의 운명은 합체된다. 소설은 “소나 사람이나 큰 구분이 없어져 소의 눈을 통해 사람 얘기를 하는 건지 사람 눈을 통해 소의 얘기를 하는 건지, 소와 사람과 그들이 일군 대지와 쟁기의 삶이 한데” 어우러지는 서사의 장관을 연출한다.

차무집 소가 12대를 이어가는 동안 120년 시간 동안 차무집 4대의 내력이 펼쳐진다. 1884년 갑신정변에서부터 2008년 ‘소’로 말미암아 인공개천(청계천) 옆 광장(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진 촛불시위 현장까지다.

책을 덮으면 사무치는 소의 서사가 담백한 문체를 건너 가슴을 진득하게 누른다. 소가 반추하는 인간 세상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삶을 곱씹게 한다. <워낭>은 1985년 등단작 <소>와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에 이어 소를 소재로 한 이순원씨의 세 번째 소설이다.

“소들이 만년 동안 달라진 것보다, 불과 최근 30년 동안 달라진 게 더 많겠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많아요. 어릴 때 소랑 벗할 수 있는 것이, 소똥에서 냄새가 안 나요. 풀만 먹었으니까요. 혼합사료를 먹는 지금 소들은 냄새가 나지만.”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