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론에 대한 고래(古來)의 철학적 관점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운명을 체념적으로 인정한 듯한 인상을 풍긴다. 서구의 경우에는 그만하면 합리적 사고가 발달했던 그리스시대에도 무녀를 통해 신탁을 받는 일이 성행했고, 희랍 비극의 주제는 언제나 ‘운명의 힘 앞에 선 인간의 무력감’이었다.
그리고 기독교가 서구사회를 지배하면서부터는 신의 의지가 만사를 결정한다는 믿음이 온 사회를 지배하다시피 하였고, 그러한 믿음은 시대가 갈수록 더욱 깊어져 저 악명 높은 중세 암흑시대로 이어졌다. 그때는 병의 치료조차 신력(神力)에만 의지하던 미개시대여서, 약초를 개발하여 병을 치료하는 여인들을 마녀로 몰아 화형시킬 정도였다.
서양에 비해볼 때 동양, 특히 극동의 중심지인 중국은 훨씬 더 개명됐던 것처럼 보인다. 공자와 맹자로부터 비롯된 유가철학(儒家哲學)은 서구적 의미의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고 형이상학도 말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한 저 유명한 언명(言明), 즉 “생을 미처 알지 못했는데 어찌 죽음을 알랴(未知生, 焉知死)”라는 말은 공자의 반형이상학적(反形而上學的)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유가철학이 갖고 있는 이러한 비형이상성(非形而上性)은 훗날 권력에 기생하는 유한계급의 유학자들에 의해 변질되어, 성리학(性理學)이라는 공소하고 현학적인 형이상학 체계가 창출되게 되었다. 이른바 주자학(朱子學)이라고 불리는 성리학은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기본적인 학문이 되어버려가지고, 일종의 실용적 형이하학이라고 할 수 있는 실학(實學)의 발달을 가로막아 결국 국력 피폐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원시유교라고 해서 운명론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 역시 언제나 천(天)을 이야기했고 천명(天命)을 모든 만물운행의 궁극에다 두는 과오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천명사상은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구별을 당연시하게 만들어 계급차별 의식에 바탕한 엘리트 독재주의를 정당화시켰다.
유가철학의 이러한 천명사상은 도가철학(道家哲學)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이 없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내세우면서도 백성이 무식해야 나라가 태평해진다고 주장하며 역시 천명을 받은 엘리트들에 의한 플라톤식 철인독재(哲人獨裁)를 은근히 찬양하고 있다. 장자의 자연귀의 사상은 사람들을 비활동적으로 만들고 소심한 운명론자로 만들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중국철학 가운데 가장 눈에 번쩍 뜨이는 것이 바로 순자(荀子)의 사상이다. 순자의 사상은 일반인에게 단지 성악설(性惡說)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 공맹(孔孟)이나 노장(老莊)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재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의 성악설 조차도 불교의 ‘실유불성 (悉有佛性, 모든 중생은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이나 맹자의 성선설에 짓눌려 거의 퇴색해버린 감이 없지 않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정적인 인간관보다는 긍정적인 인간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긍정적 인간관 가운데 내포돼 있는 현실안주적(現實安住的) 독소를 자칫 간과해 버리고 있다.
순자 사상의 골자는 성악설보다는 ‘제천론(制天論)’에 있다. 그는 인간의 속성 가운데 최대의 결점은 ‘미신숭배’라고 주장하고,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믿었던 ‘경천외명 (敬天畏命, 하늘을 공경하고 천명을 두려워한다)’ 사상을 인간의 우매한 타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여 배척하였다. 그는 인간사회의 부귀빈천이나 길흉화복 등은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승천(人定勝天, 사람은 반드시 하늘을 정복할 수 있다)을 주장하면서 제천론(制天論)을 들고나왔다. 이것은 중국의 합일(天人合一) 사상에 있어 일대 혁명이었다.
순자 이전의 사상가들은 어느 한 사람도 공공연하게 천(天)과 인(人)이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주장하지 못하였다. 공맹(孔孟)이 비록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고 하나 천명을 믿었고, 노장(老莊)이 비록 천명을 자연으로 대치시켰다고 하나 결국은 천인합일을 강조하여, 자연을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한 나머지 인간적 가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하늘’이 우리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셈이다. 순자의 제천론(制天論)은 현대의 과학정신, 또는 내가 지금껏 여러 글을 통해 일관되게 주장해온 실용적 쾌락주의 정신과 일치한다. 순자는 자연에 복종하기보다는 자연을 이용하여 현실을 더욱 편리하게 개조해나가자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의 욕망을 주요시하여 “인간은 원래 선하다” “인간은 양심이 있다”는 등 밑도 끝도 없는 미신적 낙관론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직시하여 거기에 맞는 실제적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연히 교육을 중시하게 되었고, 따라서 성악설(性惡說)의 진짜 핵심은 부정적 인간인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인간의식 개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순자 이전의 사상가들은 어느 한 사람도 공공연하게 천(天)과 인(人)이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주장하지 못하였다. 공맹(孔孟)이 비록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고 하나 천명을 믿었고, 노장(老莊)이 비록 천명을 자연으로 대치시켰다고 하나 결국은 천인합일을 강조하여, 자연을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한 나머지 인간적 가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하늘’이 우리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셈이다. 순자의 제천론(制天論)은 현대의 과학정신, 또는 내가 지금껏 여러 글을 통해 일관되게 주장해온 실용적 쾌락주의 정신과 일치한다. 순자는 자연에 복종하기보다는 자연을 이용하여 현실을 더욱 편리하게 개조해나가자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의 욕망을 주요시하여 “인간은 원래 선하다” “인간은 양심이 있다”는 등 밑도 끝도 없는 미신적 낙관론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직시하여 거기에 맞는 실제적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연히 교육을 중시하게 되었고, 따라서 성악설(性惡說)의 진짜 핵심은 부정적 인간인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인간의식 개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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