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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출세, 부르다가 내가 죽을 그 공허한 이름이여~

등록 2010-01-27 15:52

1월 sbs스페셜은 한국인을 돌아보는 시리즈의 첫 화두로 출세를 내걸었다. 출세, 한국인이라면 부르다 내가 죽을 바로 그 절대 지존의 소망아닌가. 즉 한국인이라면 더럽고 치사해도 꼭 한번 해보고 싶은 현실적인 주제를 네 번에 걸쳐 sbs 스페셜은 건드렸다.

결과는 글쎄? 어쩌면 바로 이 글쎄 라는 지점이 큰 무리없는 우리나라 다큐멘터리의 현 지점일 지도.

출세만세의 1부는 '야소골 출세기 100년'이었다. 전남 통영의 작은 마을 야소골은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국회의원에서 판, 검사 등 내로라 하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이 야소골의 골골이 쌓인 사연을 돌아보며 우리의 근대사에서 어떻게 입지전적 인물들이 탄생하는가, 그리고 그들의 뒤에 부모들의 지극한 고생과 소망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가를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쳐가는 조그만 마을의 사계를 담아내며, 자식들을 출세시키고도 여전히 그곳에서 손에 흙을 묻히며 사는 부모들의 삶을 잔잔히 돌아보았다. 손마디가 굵어지고 허리가 휘도록 그들은 자식 교육에 몸바쳤고 그 결과 누구 못지않은 자식들을 남 앞에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했던 할머니는 알토란 같은 아들을 출세의 과정에 제물로 바쳤다. 마치 출세기의 역사를 조명하듯 우리의 현대가 저런 부모들의 피땀과 자식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도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이어지는 2부는 다큐 리얼리티라고나 할까? 외딴 마을에 나름 포스가 짱짱한 7명의 남자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완장을 차기위해 벌이는 사력을 담아냈다. 처음엔 미적거리던 이들은 날이 지날 수록 완장에 연연하게 되었고, 그것을 위해 닭의 목을 치거나, 엄동설한의 찬물에서 견디는 등 극한의 일을 마다치 않았다.

닭을 잡거나, 따귀를 때리는 등의 걸러지지않은 적나라한 장면이 세간의 논란을 일으켰지만, 사실, 그 정도는 이 세상으로 오면 출세를 위해서는 그보다도 더한 일이 비일비재한 것에 비해 그닥 적나라한 것도 아니었으나,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진저리를 쳤다. 그건 마치 자신은 불타들어가면서도 남의 집 불을 보고 손가락질 하는 모양새랄까. 정말 2부 완장촌의 문제는 닭모가지나 따귀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겨우 7명이지만 그들이 같이 생활하면서 끊임없이 성원들은 완장을 찬 보스에게 불만을 터트리고 그걸 감당하지 못한 보스는 계속 바뀌어 나갔다.

그러나 강하게 하겠다던 보스에게서도, 혹은 함께 해보자던 보스에게서도 출세의 그 기득권에 대해서 잘 해명하지 못했기에, 결국 애초에 의도한 바 어떻게 리더가 만들어지는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에 엄하게 잔인함으로 구설만 만들 꼴이 되버렸다.


sbs 3부는 이제 리얼리티도 아니고, 출세의 역사도 아닌, 오늘을 사는 직장인들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 출세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출세를 하는가? 제목도 '개천에서 용꿈을 꾸는 당신에게'처럼 사람들은 대부분 노력이나 능력보다는 운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출세했는가, 출세를 하고 싶은가란 질문에 이제는 직장에 매여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조의 표정을 얻어냈다.

마지막 4부는 타임 릴리프라도 하듯, 출세를 한 사람들, 리더에게 질문을 던진다. 출세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리고 거리의 사람들에게서 벗어난 카메라는 두산 박용만 회장에게 방송 시간의 반 이상을 할애한다. 그리고 그의 행보에 대한 보충질문이라도 하듯 또 다른 시각에서의 출세한 사람이라는 유시민 의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4부 내내 가장 많이 등장한 출세라는 단어에 대한 sbs스페셜의 정의는, 오랫동안 준비한 사람이 세상에 나와 봉사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이 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이 단어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듯이, 출세의 시작, 리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리더의 자질, 출세를 하려면? 그리고 출세란 이것이다라는 식으로 4부를 구성하여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4부에 등장한 박용만 회장이나, 유시민 장관, 그리고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그러한 제작진의 정의에 부응하여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보다는, 촌음을 아껴 노력과 봉사의 자세를 잘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이걸 보는 사람들이, 야, 그래 출세를 하려면 우선 노력을 해야 해. 되는 놈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이걸 느끼게 해준 것이다. 3부의 거리의 직장인들이 그토록 운빨이라고 되뇌었건만, 제작진은 아니야,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열심히 하는 사람 따라올 자 없어 라고 설득이라도 하듯이. 그리고 유시민 장관은 출세의 약간 다른 시각을 보충하기 위해 마치 고명처럼 얹어졌다.

물론 6.25 전쟁이 끝나고 다같이 가난한 그 시절에 요이 땅! 하고 달리던 그 시절에는, 열심히만 하면 돼. 그래도 노력하는덴 당할 자가 없어라고 하면 그럴 듯했다. 아니 솔직히 우리의 근대사도 까발려놓으면 다같이 똑같은 출발 선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래도 뭐 좋다 이거다. 하지만 그 먼저 앞서나가 출세한 사람들은, 스스로 출세한 자로써 일가를 이루고, 그 일가를 이어가기 위해 온갖 무리한 시도를 서슴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대사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출세를 원하면서도 출세한 사람들에게 존경을 보낼 수 없는 것이,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둘째치고 부도덕함으로 점철된 인생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가장 윗자리에서 엄정한 법을 집행해야할 판 검사나, 공무원, 국회의원에게서 더 이상 청렴결백을 노하기 힘든 게 요즘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부도덕한 수단으로 사회의 지도층이 된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위해 어릴 적 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한다. 과고니 외고니 결국 보통 아이들과 섞이기 싫은 그들의 심정을 대변한 결과 아니었는가 말이다. 그러기에 이제,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노력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이 되어간다. 저기 변두리에서 학원도 제대로 못다니고 겨우 밥만 먹고 사는 누군가와, 엄마 손에 이끌려 일찌기 내로라 하는 선생님들을 휘젖고 사는 누군가의 삶이 어떻게 미래에 같아질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런 현실을 짚지 못한 채, 막연한 출세의 조건과 출세에 대한 부추김은, 그 막연한 1%를 위해 온국민이 달리기를 하게 만드는 조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솔직히 출세 만세라기에, 한번쯤은 출세 그 허무한 이름의 껍질을 까발려 주기를 원했다. 그런데 역시 sbs 였나? 사계를 담아내며 출세기의 시작을 알렸던 출세만세는 결국 어중간한 직장인들에게 새해에도 열심히 해봅시다라는 사장님의 훈화 말씀의 또 다른 버전이상을 넘지 못했다. 아쉽다.

고릴라같은 조직 생활을 하는 동물들도 치열한 우두머리 다툼을 한다. 하지만 우두머리가 된 고릴라는 생각 외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한다. 언제 아랫것들이 자기 자리를 노릴까 하는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그로 인해 때로는 몸까지 망가지기도 한다. 물론 그는 우두머리가 되어 암컷들을 누리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다. 얼마 안있어 그는 보다 젊은 놈에게 우두머리 자리를 빼앗기고, 자리를 빼앗긴 전 우두머리의 나머지 삶은 비루하다고 한다. 오히려 서열에 들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비위나 맞추고, 우두머니 수컷 몰래 암컷이나 만나는 수컷은 오래오래 장수를 누린다고 하니, 차라리 어정쩡한 완장촌을 보여주느니, 동물의 세계를 한번 더 돌려주는 것이 시사적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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