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실업난이 만든 프리터…30~40대 알바 는다

등록 2010-01-27 19:14수정 2010-01-28 01:16

‘청장년 프리터’ 230만명
주유소·편의점 등 청소년 알바자리까지
“아무리 일해도 미래가…”
김범석(가명·42)씨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2008년 실직한 뒤 2년째 청소년들이나 할 법한 일을 한다.

그는 매일 아침 8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ㄱ주유소로 출근해, 저녁 7시까지 점심시간을 빼고 꼬박 10시간 일한다. 야근수당까지 합해 평균 시급 4500원 정도를 받는다. 날이 갈수록 상황은 절박해지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딸아이 교육비 30만원, 식비 40만원, 통신비 10만원, 교통비 5만원, 각종 공과금 10만원…. 김씨의 재산은 전세보증금 2000만원이 전부다. “이제는 아무리 절약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일거리를 찾을 수도 없고….”

2년 이상 장기간 실업 상태에 있는 등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30~40대가 200만명을 훌쩍 넘었다. 이들은 노동시장의 외곽에 존재하면서 임시직 노동(아르바이트)으로 생계를 잇고 있어 이른바 ‘프리터’라 불린다. 우리나라 프리터 실태를 처음으로 조사한 현대경제연구원은 장기실업자 외에도 △시간제·비전형 근로자(파견·용역·재택·일일)나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준비자도 ‘노동의 현재와 미래’가 불안하다는 측면에서 프리터에 포함시키고 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 부가조사’ 결과를 이런 기준으로 나누면, 30대 프리터는 2003년 8월 93만명에서 2009년 8월 110만명으로, 40대 프리터는 79만명에서 120만명으로 늘었다. 전체 프리터는 525만명으로 2008년에 견줘 45만명쯤 증가했다.(2009년 수치는 추정치)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배두성(가명·36)씨는 대학 졸업 뒤에도 취직을 못해 프리터로 눌러앉은 경우다. “편의점 일이 단순노동이긴 하지만 줄곧 서 있어야 하고 손님이 몰릴 때는 정신이 없어 꽤 힘들어요.”

배씨의 생활은 ‘수입은 적지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일본식 프리터의 삶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는 편의점 일이 끝나고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대리운전을 하며 밤거리를 다닌다. 하룻밤 많을 때 3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그러나 그의 한 달 수입은 110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주변에 저와 비슷한 나이대에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많아요. 이들한테는 잘살아 보겠다는 목표의식이 더 이상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주저앉은 거죠.” 배씨는 자신도 삶에 대한 자신감이 계속 줄고 있다고 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27일 “고용환경의 악화와 40대의 퇴직 압력이 가속화하다 보니 중·장년층이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이런 고용 상황은 앞으로도 영향을 미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30~40대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유소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리도 찾지 못하는 경우는 벼랑 끝에 가깝다. 서울에서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하는 오성수(가명·39)씨는 적은 돈을 벌더라도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싶어 한다. 과거 레스토랑,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일하다 ‘노땅(나이 많은) 알바생은 보기에 안 좋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지난 2000년 지방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오씨는 자신을 “낙오자”라고 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칠 뿐이다. 취업에 성공할 때까지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나,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면서 여기에 이르렀다. 그는 현재 월세 17만원짜리 고시원에 산다. “많은 사람들이 청년 실업자를 문제삼으면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의 취업 문제에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저 낙오자라며 측은하게 바라볼 뿐이죠.”

이런 자리 경쟁은 한정된 아르바이트 노동시장에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밀려들기 때문이다. 30~40대 주부마저 자녀의 사교육비를 벌려고 서점이나 레스토랑, 패스트푸드점 등 10~20대가 선호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놓고 젊은 층과 경쟁한다.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 일하는 김현숙(가명·44)씨는 “보통 하루에 5~6시간 일하면서 한달에 55만원가량 받아 수입의 대부분을 사교육비에 쓴다”고 했다.

프리터들은 누구라도 ‘탈출’을 꿈꾼다. 3년 전 실직하고 1년 가까이 상품포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영수(가명·44)씨는 요즘 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에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10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다. 3년 전만 해도 서울의 중견 코스닥 기업의 총무팀 과장으로 근무했다. 그러다 2008년 봄 회사가 부도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이후 재취업을 위해 수십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생계가 막막해진 고씨는 결국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눈을 돌려 2008년 겨울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이후 목욕탕 청소 등을 전전하다 지난해 3월 지금의 포장일을 시작했다. 그는 “힘들어도 열심히 생활하는 내 모습을 보며 딸아이가 잘 성장해주기를 바랄 뿐”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막연하지만, 희망만이 그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프리터(Freeter)란?프리터는 자유(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일본식 합성어로,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을 말한다. 1987년 일본의 한 구직잡지가 ‘사회인 아르바이트’를 ‘학생 아르바이트’와 구분하느라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내 학계에서는 △장기 실업자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준비자 △시간제·비전형 근로자 등을 이 범주에 넣고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