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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포복절도 안내방송 ‘7호선의 명물’

등록 2010-01-29 07:20수정 2010-01-29 07:50

‘빨간넥타이’ 지하철 기관사 민병준씨
“저출산시대 임신부는 국가유공자, 자리 양보를”
지난 25일 아침 8시4분, 지하철 7호선 출발역인 온수역. 지각 출근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운 좋게 ‘빨간넥타이 기관사’ 민병준(30)씨가 운전하는 전동차에 올랐기 때문이다. 온수역을 출발해 첫번째 정거장인 천왕역부터 그의 ‘말폭탄’이 작렬한다.

“달리는 지하철에 뛰어오르는 건 슈퍼맨이나 가능한 일입니다. 반드시 내리기 전에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눈치 빠른 잔소리도 서슴없다. “저출산 시대에 임신부는 국가유공자와 다름없습니다. 임신부가 보이면 자리를 양보해주시고, 그냥 배가 나온 분이라도 귀엽게 여겨 자리를 양보하셔도 괜찮습니다.”

“지친 이들 쉼터 되고파”
재밌는 안내문구 고심
승객 격려 덕에 힘얻어

민씨는 만 2년을 조금 넘긴 신참 기관사다. 그는 “생활에 지치고 시달린 분들에게 귀로 듣는 쉼터가 되어 주고 싶어서” 특별한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이를테면 “두고 내리신 물건은 무임승차의 죄목으로 유실물센터에 구류되오니, 유실물 찾아 면회 가는 일이 없도록 물건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물건 챙기기를 당부하는 식이다.

그는 집이 있는 충남 천안시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회사를 오간다. 승객으로 처지가 바뀐 그는, 이 시간 동안 누구나 편하고 즐겁게 들을 만한 안내문 내용을 고민한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휴대용 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에 입력하거나, 작은 수첩에 기록을 해둔다. 이렇게 안내용 문구를 따로 정리한 것만 벌써 공책 한 권이 다 됐다.

그가 웃음만을 생각하며 방송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여름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이 잇따라 서거했을 때 “가족분들과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차마 끝맺지 못하고 마이크 전원을 내린 일도 있었다.


방송이 계속되면서 승객들이 일부러 기관실을 찾아 “안내방송을 잘 들었다”며 격려해주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런 승객들 덕분에 운전실에 혼자 있다는 느낌도 사라졌다. 그래서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 대신, 어느 날 아내 김정임(30)씨가 매준 ‘빨간넥타이’를 별명으로 삼았다. “승객 여러분, 빨간넥타이 기관사 민병준입니다. 오늘도 즐겁고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빨간넥타이’의 이력은 그의 안내방송만큼이나 특별하다. 열차를 운전하는 기술은 충북 증평의 특전사 제13여단에서 1999년부터 8년간 근무하면서 배웠다. 적지에 침투해 열차를 탈취했을 경우, 이를 직접 운전하는 훈련을 받은 것을 ‘전공’으로 살려 기관사로 취직한 것이다.

그의 안내방송이 어디서나 이뤄지지는 않는다. 잠을 청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이 많은 구간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될까 싶어 방송을 피한다. 이런 곳을 파악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운행 구간을 돌아보며 연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특히 신경을 쓰는 곳은 졸다가 자칫 내리지 못하는 승객들이 많은 환승역이다.

어느새 목적지인 건대입구역에 도착했다. 전동차를 내리는 승객들에게 그가 힘을 내라는 안내방송을 ‘날린다.’

“아침 식사는 다들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글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사진·동영상 조소영 피디, 동영상은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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