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터진 국정원 개입…조계사에 전화 걸어 압력
‘MB 풍자 미술품’·‘세종시 회유’ 등 잇따른 논란
시민단체 행사 취소시켜…국정원 “전화 안했다”
‘MB 풍자 미술품’·‘세종시 회유’ 등 잇따른 논란
시민단체 행사 취소시켜…국정원 “전화 안했다”
국가정보원 직원이 조계사에 ‘압력’을 행사해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이 이곳에서 열려던 행사를 취소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정원의 이런 행위는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한 미술작품 철거 요구, 세종시 수정안 지지를 위한 충남 연기군 주민 회유 의혹 등에 뒤이은 것으로, 국정원법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위법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계사 이아무개 과장은 29일 <한겨레>와 만나 “조계사를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 권열씨가 28일 오전 전화를 걸어와 ‘반정부적인 정치집회가 조계사에서 열린다. 총무원장 스님이 방북도 하는데, 이런 정치집회는 종단에 누가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해 왔다”며 “결국 28일 낮 12시께 주지스님의 지시로 행사가 불허됐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이날 오후 2시께 주지스님이 불러 가보니 권씨가 와 있었다”고 덧붙였다.
불허된 행사는 31일부터 2월7일까지 조계사 경내에서 열릴 예정이던 ‘바보들 사랑을 쌓다’ 행사로, ‘진실을 알리는 시민’(진알시)과 소울드레서, 촛불나누기, 시민광장 등 2008년 촛불집회 때 만들어진 시민단체들이 준비했다. 이들은 라면상자 1000개를 이용해 10m 높이의 첨성대 조형물을 쌓은 뒤 이 라면을 불우이웃에게 나눠줄 계획이었다. 행사 기간에는 ‘의료 민영화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4대강 사업 추진 중단’, ‘<한국방송>(KBS) 수신료 거부’ 등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도 준비돼 있었다. 행사는 지난해 12월 조계사 종무회의의 허가를 받았다.
이 과장은 “종무회의가 허가한 행사가 불허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국정원의 전화는 굉장한 부담으로, 공권력 남용”이라고 말했다.
국가정보원법 3조는 국정원의 직무를 국내 보안에 관한 정보 수집,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등에 관한 수사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계수 건국대 교수(법학)는 “국정원 직원이 조계사 총무과장 등에게 전화를 한 것은 국정원법상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정 ‘진알시’ 운영위원은 “이런 불우이웃 돕기 행사조차 국정원이 위협하고 간섭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황당스러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새로운 공간을 찾는 대로 행사를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권씨는 불교계 담당으로, 조계사에 이런저런 전화를 한다”며 “하지만 사랑의 라면탑 쌓기 행사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전화를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박수진 신승근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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