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대통령 묘역 ‘방화의심’ 불났다
뒤쪽 언덕 잔디 일부…부근서 보수단체 전단지 발견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2일 오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비슷한 시각 묘역 부근에서 김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보수단체 이름의 전단지가 발견돼, 화재와 연관성이 있는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날 국립현충원과 서울 동작경찰서의 말을 종합하면, 오전 9시30분께 김 전 대통령의 묘역 뒤쪽 언덕에서 4㎡ 정도 크기의 화재 흔적이 발견됐다. 이철환 국립현충원 사무관은 “오전 9시10분 순찰을 할 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얼마 뒤 묘역을 청소하던 직원이 불탄 흔적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국립현충원은 이날 오전 8시20분께 현장에서 300m 떨어진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옆 정자에서 김 전 대통령을 ‘친공산주의자’로 표현한 보수단체 ‘○○○○협의회’ 이름의 전단지 11장을 발견해 긴급순찰에 나섰다. 곧이어 오전 8시55분께 무명용사 위령탑 부근에서 같은 전단지 5장을 추가로 수거해 경찰에 신고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가 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오전 9시10~30분께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으나, 불이 난 장소는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에 잡히지 않아 정확한 화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동작경찰서 강력팀 관계자는 “자연발생적으로 불이 붙을 가능성은 낮다”며 “누군가 방화를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화재 현장 시료를 채취하고, 국립현충원 주변의 시시티브이 자료 등을 분석해 전단에 이름이 나오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주변을 다녀갔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국립현충원은 이날 낮 12시 이희호씨가 김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뒤, 화재 현장의 흙을 파내고 잔디를 새로 깔았다.
김대중평화센터(이사장 이희호)의 최경환 대변인은 “부끄럽고 개탄스러운 일로, 국민들이 놀라고 참담한 심정일 것”이라며 “누가 어떤 의도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경찰은 엄중하고 신속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현창 국립현충원 주무관은 “묘역에 초소를 설치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