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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9살 벼랑끝 희망찾기…‘내 친부모 어디 있을까’

등록 2010-02-03 08:08수정 2010-02-03 15:49

친 부모를 찾고있는 에이즈 환자인 서모씨가 29일 오후 충남 천안 한 공원에서 축구동호회사람들의 경기를 바라보고 있다. 서씨는 최근 면역 수치가 떨어져 운동으로 몸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친 부모를 찾고있는 에이즈 환자인 서모씨가 29일 오후 충남 천안 한 공원에서 축구동호회사람들의 경기를 바라보고 있다. 서씨는 최근 면역 수치가 떨어져 운동으로 몸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핏덩이로 생선가게에 맡겨져, 유일한 기록 ‘80년 12월8일생’
방황하며 살다 에이즈 감염, 삶의 이유, 뿌리찾기서 되찾아
“쓰러질 때까지 하루하루가 그렇게 소중할 수 없어요. 무덤 속에선 아무도 만날 수 없으니까….”

그는 힘에 부친 듯 이 한마디를 내뱉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세상에서 점점 밀려난 스물여덟 살 청년은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지난달 27일 충남 천안 시외터미널 부근의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너무 많은 일을 겪은 탓인 듯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청년의 이름은 김규빈(28·가명).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돼 치료를 받고 있는 김씨는 세상에 태어난 뒤 곧바로 헤어진 부모를 찾고 있다. 그는 1981년 1월 경남 마산시 합성동 한 골목길 집앞에서 발견됐다. 당시 친부모는 갓태어난 핏덩이를 마산 ‘동마산시장’의 생선가게 주인에게 맡기고 “잠시 뒤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모습을 보이지 않자, 생선가게 주인은 다른 사람을 시켜 합성동 어느 골목길 집 앞에 김씨를 놔놓게 했다. 김씨가 입고 있던 배넷저고리 안쪽에는 ‘1980년 12월8일 출생’이라고 적힌 쪽지가 들어 있었다. 김씨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었다.

김씨는 고교 2학년 때 자신을 길러준 분이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때문에 2년간 심리치료를 받았다. “그때는 방황도 많이 했어요. 저도 모르게 거친 반항아가 돼 술도 마시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죠.” 가출과 귀가를 반복하던 김씨는 자신의 기록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어릴 적 사진도 모두 불태워 버렸다.

마음의 병은 이윽고 몸의 병으로 옮겨갔다. 지난 2007년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삶의 이유를 잃은 듯했다. 세상 밖으로 홀로 내던져졌다는 고독감은 그를 더욱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김씨는 “몇 번이고 바다에 뛰어들어 죽을 생각으로 배를 타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고 지난해 여름. 날이 갈수록 몸의 기력이 자꾸만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이러다 영원히 친부모를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우선 방송국의 사람찾기 프로그램에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기록’이 없는 김씨에겐 방송에 소개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김씨는 다시 지난해 성탄절 서울 청량리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가족찾기 모임) 사무실을 찾았다. 나주봉 가족찾기 회장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나 회장은 김씨를 서울 동대문경찰서로 데려가 유전자정보(DNA)의 채취를 도왔다. 또 경기 남양주경찰서 이건수 경사에게 소개도 해줬다. 이 경사는 김씨의 사연을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 센터’에 올렸다. 이 경사는 지난달 31일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국과 이야기가 잘돼 곧 사연이 소개될 것 같다”고 했다.

김씨도 기운을 내고 있다. “친부모를 찾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제 삶도 포기할 수 없고요.” 찻집 창 밖 겨울 하늘이 유난히 파랗게 보였다.

천안/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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