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노점상까지, 어린이집에서 장례식장까지….
쇠고기 원산지 표시 위반 업체의 명단이 3일 공개됐다. 수직적으로는 쇠고기 수입업체부터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수평적으로는 업종 전반에 걸쳐 외국산 쇠고기는 국내산 등으로 ‘둔갑’해 거래됐다. 정부가 2008년부터 원산지 위반에 대해 엄중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정작 위반 업체 명단을 공개하지도 않은 채 솜방망이 처벌을 한 탓이 크다.
■ 적발 내용 뜯어보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3일 공개한 704곳의 원산지 표시 위반 업체의 명단을 보면, 업종을 불문하고 전국적으로 불법이 저질러졌음을 알 수 있다. 대형 유통업체 가운데서는 대구 동아마트 상인점과 스게티 대구백화점에서 쇠고기 원산지를 거짓으로 표시했다가 걸렸다. 사람들의 이동이 잦은 예식장과 장례식장, 병원도 무더기로 단속에 걸렸다. 경기 광명 뷰티웨딩홀과 울산 남구의 캐슬웨딩홀, 경북 경주장례식장 등 10여곳에서 원산지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위반 업체의 이름과 주소만 민변에 넘겨 해당 업체의 업태는 이름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버젓이 ‘한우’라는 이름을 쓰면서 원산지를 속인 ‘양심불량’ 업체도 62곳이나 됐다. 대전 서구 ‘진짜한우고기로만식당’ 등이었다.
축산물 유통업체로 보이는 이름도 10곳 넘게 발견됐다. 명단을 보면, 미국산 쇠고기 전문 수입업체인 에이미트의 청주 봉명점을 비롯해, 미트마트(광주 북구), 한국유통정육부(경기 파주), 강북축산유통(서울 노원), 대가축산유통(대구 달서) 등이 법을 어겼다.
■ 농식품부는 왜 공개하지 않았나? 농식품부는 지난해 12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날 위반 업체의 명단을 공개했다. 지난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민변이 농식품부에 대해 낸 행정정보 공개 소송에서 민변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정부가 팔이 비틀린 뒤에야 위반 업체 명단을 내놓은 셈이다. 농식품부 소비안전정책과 관계자는 “농산물품질관리법에 따라 위반 업체에 대해 구속을 하거나 벌금을 물렸기 때문에 업체의 이름까지 공개하는 것에는 이중처벌의 논란이 뒤따를 수 있었다”며 “업체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정부가 이들을 비호한 것처럼 보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에만 원산지 허위 표시로 벌금형이 1648건, 벌금액수가 28억8590만원이었고, 징역과 집행유예를 받은 건수도 59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류제성 민변 사무차장은 “정부의 단속에 걸려도 내는 벌금은 평균 175만원 수준인데, 그 정도면 업계에서는 수지타산을 봐서 계속 원산지를 속여 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징역 등의 처벌을 한다고 하지만 업체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채로 슬그머니 처벌을 해 정책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식품부가 지난해 11월 이후 농산물품질관리법이 개정된 이래 이를 어긴 업체 명단을 누리집에 올린 내용을 보면, 그 사이에도 90개 업체가 쇠고기 원산지를 속여 팔아 시정명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대전가오점은 ‘식육가공품’에 대해 원산지를 허위 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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