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법원장에 첫 주의조치 권고
40대 판사가 재판 중 70세 가까운 원고에게 재량권을 넘어서는 발언을 했다면 인권침해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4일 결정문을 통해 서울중앙지법의 A판사가 재판 도중 원고인 B(69)씨에게 "버릇없다"고 발언한 것은 인권침해라고 판단해 해당 법원장에게 판사를 주의조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B씨는 "법정에서 허락받지 않고 발언했다는 이유로 판사로부터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느냐'는 질책을 받아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지난해 6월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당시 법정에 있던 B씨 변호인도 참고인 진술을 통해 "진정인의 주장은 사실이며 피진정인(판사)의 말에 너무 당황했고 매우 불쾌했다. 피진정인은 40대였고 진정인과 참고인은 70대 안팎이었는데 손아래 사람에게 사용하는 '버릇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현장에서 대응하지 못한 자괴감과 충격으로 다음날 해당 사건의 소송 대리인에서 사임했다.
A판사는 이에 대해 "진정인에게 엄히 주의를 준 사실은 있으나 정확한 발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인권위는 사건 발생 전후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판사가 '버릇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인권위는 "통상 '버릇없다'는 표현은 '어른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경우'에 이를 나무라며 사용하는 말이다. 진정인이 법정 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고 피진정인이 재판장으로서 법정 지휘권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40대인 피진정인이 69세인 진정인에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법정 지휘권도 공복의 지위에 있는 공무원에게 주어진 권한인 이상 공무원이 이를 국민에게 행사할 때는 헌법 제10조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판사의 재량권 범위를 넘어선 법정 발언은 원고 또는 피고 측의 구분을 떠나 누구에게도 인권침해 소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A판사는 "진정인은 재판장 허락 없이 재판장과 피고대리인의 대화에 끼어들며 말해 법정 예절을 지키라고 주의를 줬다. 이는 재판장의 법정 지휘권 행사이고 진정인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다. 진정인이 주장하는 그대로 표현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인권위는 전했다.
한편 A판사가 소속된 서울중앙지법원장은 해당 판사에게 주의조치를 했고 법정 모니터 강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의사를 인권위에 전달했다.
한상용 기자 gogo213@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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