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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겨레가 만난 사람]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편 전문

등록 2010-02-05 09:41수정 2010-02-05 09:46

“의사당 몸싸움 맨 앞줄에서, 나 자신이 참담했다”
 지난 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정욱(40) 한나라당 의원과 마주 앉았을 때, 그의 앞엔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적은 두툼한 A4 용지가 놓여 있었다. 보좌관들이 정성껏 만들어준 것이리라. 대개 정치인들은 인터뷰 질문서를 미리 달라고 요청한다. 정치적 실언을 피하기 위해서다. 민감한 질문은 현장에서 직접 할 수 있으니까, 개략적인 질문서를 먼저 주는 건 기자들에게도 좀더 충실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갑작스레 인터뷰어가 바뀌었다. 원래 홍 의원을 인터뷰하기로 했던 기자에게 긴급한 사정이 생겨, 내가 대신 가게 됐다. 홍 의원이 두툼한 예상 질문·답변서를 책상에 올려놓는 순간, 살짝 미안함이 들었다. 저게 무용지물이란 걸 알게 되면 홍 의원 표정이 어떨까.

 그런 생각은 기우였다. 마치 대본을 외우고 나온 배우처럼, 그는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왜 그런가를 설명하는 부분조차 너무 매끄러워서 비현실적이란 느낌을 줄 정도였다. 이래서 홍 의원에겐, 철저히 계산적이고 가식적이고 자기 과시적이란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에선,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어떤 권위에도 복종하지 않을 거 같은 비주류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이율배반이었다. 이것마저 치밀한 계산일까. 그의 명민함이, 잘하면 이 부조화의 간극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 같기도 했다.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 얼마 전 국회에서 노동관계법 강행처리에 항의하며 눈물을 쏟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게 기사화된다는 거 자체가 서글픈 일이죠, 동료의원으로서 당연한 자세인데…. 어느 선배의원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국회는 사회 갈등과 대립을 그대로 반영하는 곳이다.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국민들이 거리에서 싸운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거죠. 싸움과 갈등을 대화로 승화시키는 게 국회지 그걸 재연하는 데가 아닙니다. 이정희 의원을 비롯해 민노당 의원들이 폭력이나 욕설 없이 단상에서 새로운 형태로 농성을 벌이는 게 인간적으로 진정성아 느껴졌고, 오래 고생하는 데 연민이 들었습니다. 이 의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을 쏟는데, 얼마나 절박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서, 한 인간으로서 동료의원으로서 남성으로서 위로해주고 싶었던 장면이었습니다.”

- 여야가 의사당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할 때 홍 의원은 초선이고 젊으니 흔히 ‘돌격대’라 불리는 맨 앞줄에 섰을 거 같은데, 그 자리에 서면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누구나 참담하다고 생각하겠죠. 그건 정치현실의 참담함보다는 그 자리 그런 역할에 응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해 더 참담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한-미 에프티에이(FTA)를 지지하지만 (FTA 비준동의안이) 외통위(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될 때, 그래서 폭력사태가 났을 때, 저는 거기에 연루됐다 나오자마자 바로 국회의원 뱃지를 떼냈고, 자랑스럽게 느껴질 때까지 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개인적인 다짐이진 하지만 아직 못달고 있습니다. 미디어법 사태를 겪고, 지난해엔 제가 절대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폭력과 점거엔 가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예산 정국에선 그 역할을 맡지 않았습니다. 초선들 다 나오라고 할 때 나가지 않았고요…, 튄다는 거라기 보다는, 제일 불행한 삶은 소신이 없는 삶이다, 한번 하건 열번 하건 소신을 지키는 삶을 지켜는 길로 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당 지도부의 질책이나 따가운 눈초리가 없던가요?

 “글쎄요. 우리 지도부가 그런 인격이라곤 생각하고 싶지 않고요, 다만 다른 분들이 다 고생하시는 데, (나 혼자만) 안하는 데 대한 따가운 시선은 있겠죠. 그러나 미디어법 때 대부분 의원들이 국회에서 점거하고 숙식 해결할 때는, 그때는 동참했습니다. 다만 표결의 순간만은, 국민이 저한테 부여한 엄숙한 순간만큼은 당 대표가 아니라 당 대표 할아버지라도 저한테 강요할 수는 없죠.”

 - 미국의 유명 보딩스쿨(초트 로즈메리 홀)과 하버드대학을 나온 홍 의원은 조기유학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외고 존폐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려운 문제죠. 외고가 입시전문기관으로 성격이 변질된 건 분명히 짚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교육엔 경쟁이 필요하고 이것이 교육기관의 다양화 형태로 나와야지, 잘되는 걸 눌러서 하향 평준화를 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기본적인 보수의 시각에 동의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 교육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결과의 평등엔 반대하지만 기회의 평등조차 주지 못하는 데서 출발하는 겁니다. 보수여당이 특히 교육 부문에선 민노당과 진보신당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습니다. 진보정당이 추진하기 때문에 국민이 믿지 못하는 걸, 우리가 검증된 추진력과 실행력으로 과감히 치고나가서, 무상교육 형태가 됐건 어쨌든 교육적 기회의 평등을 제시하는 정책을 제공해야 합니다.”

 - 외고 폐지에 동의합니까, 아니면 정부가 내놓은대로 입시제도를 수정해서라도 존속시켜야 한다고 봅니까?

 “외고 폐지엔 반대합니다. 다만 원래의 성격대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정부에 없으니까 차선책으로 그럴 바에야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데요, 1차적으론 제대로 만들어야죠. 경쟁력을 가진 교육기관에 함부로 메스를 가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느 인터뷰를 보니까,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헤럴드미디어 그룹을 운영하면서 회사가 안정이 되니 권태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요….

 “그건 분명히 부차적으로 설명한 거고요, 주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 어쨌든, 정치엔 권태를 느끼지 않습니까?

 “어려운 질문인데요, 권태라기보다는 이곳이 제가 서있어야 할 곳인가 고민은 항상 합니다. 공직을 가장 명예로운 직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해야할 일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드는 겁니다.대한민국이 이 정도까지 세계 강대국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건 국가 비전과 국민 비전이 일맥상통했기 때문입니다. 산업화 때는 더 잘 살겠다는 국민 의지가 있었고, 민주화때는 좀더 사람답게 살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국민과 국가가 아웅다웅하면서도 함께 간 겁니다. 지금은 선진화를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는데…, 국가의 성공과 국민의 성공을 잇는 다리가 어느새 끊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은 12위 국가가 되고 G20가 돼도 나는 내집 마련하지 못하고 아이들 제대로 교육 못시키고 죽도록 공부해도 직장을 못잡는다, 국가는 엄청난 비전을 갖지만 국민은 엄청난 냉소를 가진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집권여당과 이명박 정부가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이겁니다.

 이걸 어떻게 다시 잇느냐, 그런 시대정신을 찾아내는 게 정치가 해야될 일인데, 정치가 못하고 있고 안하고 있습니다. 그런 책임을 방기하는 국회에서 재선 3선 4선을 하면서 경륜과 선수를 쌓는다면 과연 그런 기회가 주어질 것이지,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서 시대정신을 앞당길 것인지, 이 질문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습니다.”

 - 또다른 인터뷰에선 대선 도전의 포부를 암시하는 발언도 했습니다. 그럴려면 정치를 계속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질문의 정확한 답은, 당연히 정치를 하는 사람이 큰 국정을 경영해보고 싶은 꿈이 왜 없겠느냐, 기업을 경영한다면 큰 기업을 경영해보고 싶은 것이고…, 그런 원론적인 차원에서 말씀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이끌어가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되는 게, 국회의원 열심히해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원수는, 국가 지도자는 하늘을 감동시켜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건 국민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인데, 저는 아직 그런 일을 해본 적도 없고 국회에 머물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지도 않아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부친은 영화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씨다. 중3 때 혼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와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가 23살 때 펴낸 미국유학 성공기 <7막7장>은 1백만부가 넘게 팔렸다. 2002년엔 헤럴드미디어를 인수해 언론사 사주로서 활동한 적도 있다.

 - 헤럴드미디어를 경영할 때, 신문에 ‘홍정욱 스토리’를 연재했습니다. 자기 홍보를 위해서, 자기 야심을 위해서 언론사를 인수하고 경영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는데요.

 “저도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입니다. 그 당시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침체된 신문을 살리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조직한 티에프(TF)에서 <7막7장>이 인기가 있었으니까, 이 책이 절판이 됐는데, 다시 연재해 보는 게 어떠냐 그랬고, 거기에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는데 큰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신문의 흥행이 중요하지만 신문이 가져야 하는 정도가 있는데 그 정도에 어긋났던 일이지요. 현 정부도 그런 생각이 팽배해 있는데요, 실적으로 승부하겠다, 누가 뭐래도 과정이 어떻게 되더라도 결과로 심판받겠다, 그게 경영자의 생각입니다. 저도 그런 경영자의 생각을 갖고 있었고요. 그러나 그런 실적을 달성한 뒤엔, 특히 정치에 들어와서는 그것이 정치적 리더십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라는 것을 느끼면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 홍 의원에 대해선 호오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한편으론 너무 자기 과시적이라는 반감도 적지 않은 거 같습니다. 지난해 총선 승리 직후에 스스로 ‘내가 마치 성공하는 기계 같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거 같습니다. 너무 매끈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란 느낌이 나는데, 스스로도 그런 점을 느낍니까?

 “저 스스로도 절감을 합니다,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린다는 건 사실이구요. <7막7장>이란 책을 보면, 굳이 변명을 하자면 모든 분들이 23살 때 쓰신 일기를 한번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치기어린 배짱과 야망, 자신의 치부에 대해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젊은이의 마음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미 세상에 다 알려진 글이라 지금 수습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런 젊은이가 쓴 글이라고 치부하시고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자는 생각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합니다.

 성공이라고 하는 게 항상 치열한 갈망에서 시작하고, 처절한 노력으로 이뤄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성공이 인간의 노력과 하늘의 축복이 딱 만나는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고, 인간의 노력 만큼은 치열하든 처절하든 더이상 할 수는 없다는 데까지는 한다, 그 다음엔 맡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왔습니다. 학업을 할 때도, 경영을 할 때도, 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그것이 조금 미련이 남는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는 거 같아요. 다만 그런 이미지 자체에 대해선, 그건 모래성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이미지도 하루 아침에 끝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일관성을 가지고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오랜 세월 동안 진정성을 갖고 승부를 해야지요. 제가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다닌다고,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닌다고 이미지가 바뀔 거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 실패를 해본 적이 없죠?

 “아유, 제 나이에 저만큼 많은 굴곡을 겪은 사람도 드물 겁니다. 유복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15살 때 조기유학, 남들이 생각하는 거와는 달리 첫 2년을 제외하고 나머지 10년을 장학금으로 생활했고, 로스쿨을 나온 뒤에도 변호사가 되지 않고 금융계로 뛰어들었고, 억대 연봉을 받다가 기업을 창업해서 망하고, 몇만원 갖고 가족과 함께 다시 시작해야 했고, 32살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했고, 그 뒤에 언론사를 통째로 빚을 져서 인수해서 다시 살려냈고…, 정계 입문을 권유받고 들어갔지만 어쨌든 공천 탈락했고, 선거 23일을 남겨두고 강력한 노회찬 대표가 계신 노원병 공천을 받았고…,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 순탄한 과정이었느냐에 대해선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업 실패는 미국에서 그랬던 건가요?

 “그럼요. 벤처기업을 동문들과 만들어서, 그때 인터넷 붐이라 제가 월가에서 번 돈도 다 집어넣었죠. 이 회사가 1년만에 완전히 도산을 했습니다. 빚더미에서 전부 다시 시작해야 했죠. 헤럴드미디어 때도, 인수하자마자 노사분규와 검찰 고발로 거의 11건의 소송을 겪으면서 그것을 극복해야 했거든요. 그런 과정들이 시험이 아니었다, 공천 탈락이 시험이 아니었다 한다면 세상에 어떤 실패를 해야 하는지….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성공만으로 재단하기엔 삶이란 게 참 복잡한 거 같습니다.”

 - 그래도 홍 의원은 항상 성공했고, 치밀한 계산을 하면서 경력 관리를 한다는 이미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제가 부덕하기 때문이겠죠. 제가 살아온 여정이란 게, 18대 총선에서도 가장 귀족적인 후보와 가장 서민적인 후보의 구도가 나왔는데, 사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재산순위를 보더라도 제가 몇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이미지가 고착되는 건,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자기관리에 철저했기 때문이지만, 부정적으로 보자면 아직까지 표면이 대단히 중요시되고 있는 사회에서 제가 덕 있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겠죠. 저희 아버지는 영화배우셨거든요, 재벌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고…. 제가 한나라당에서 가장 귀족적인 정치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영화배우를 귀족으로 보는 건, 아마 제가 처음일 겁니다.”

 - 32살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했다고 했는데요, 물론 법적인 의무를 다한 것이긴 하지만 현역을 피하기 위해 늦게 귀국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현역으로 병역을 마쳤다면 더 나았겠다는 생각은 안해봤습니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대학생들에게 강연할 때, 제대로 병역 근무를 하지 못해서 아쉽게 생각한다, 법의 틀에서 가야됐던 것이기 때문에 사과하고 반성할 필요는 없지만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다만 그것이 일부러 시기에 맞춰왔던 건 아니구요, (미국에서) 기업이 잘됐다면 더 오래 있었을 수도 있었겠죠, 30살 때 세웠던 기업이니까. 잘됐으면 대한민국 공직만 있는 건 아니니까 여러 경로로 나갈 수 있었겠죠. 만약 제가 한국에서 선거를 통한 공직에 종사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그런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면, 아예 일찍 들어와 현역을 마쳤을 수도 있었겠죠. 아쉽고 부끄럽지만, 치밀하게 계획한 건 아닙니다.”

 -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정치적 지향이 있었을 텐데요,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쪽 노선을 지지했습니까?

“보수와 진보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틀은 국가적 영역의 확대냐, 국가적 영역의 축소냐 아닙니까, 거기서 전 국가적 영역의 확대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공직에 들어오는 것이죠, 자유방임을 하기 위해서라면 공직이 왜 들어오겠습니까?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당연히 미국에서는 민주당 시각에 더 근접하는, 특히 교육과 복지 부분에서는 근접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왜 민주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선택했습니까?

 “우리나라는 이런 보수와 진보의 틀이 좀 헝클어져 있죠. 거기에 북한이라는 요소가 가미되고, 지역이라는 요소가 가미되고, 노동운동이라는 요소가 가미됨으로서 국가적 영역의 확대냐 축소냐 하는 건 덜 중요한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국회에서 일어나고있는 논란을 보면, 한나라당이 국가 영역의 확대를 주장하고 민주당이 국가 영역의 축소를 주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잖아요? 그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 문제, 노동 문제, 지역 문제에서 제가 넘기 힘든 벽이 있었어요, 민주당과 함께할 때엔. 그래서 한나라당을 선택을 했죠.”

 - 지난 1년을 돌아보면 한나라당의 정치적 노선이 본인과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까?

 “그동안 제가 해왔던 표결, 제가 내세웠던 비판과 정책 대안들을 보시면 아마 답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제가 오늘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이유일 것 같습니다.(웃음) 답답할 때가 많죠. 예를 들어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잣대인 낙태나 사형이나 이런 문제에서 과연 우리 한나라당 160여명 의원들이 보수적 입장이 무엇인가를 알고 계실까, 우리가 정말 당론을 정한다면 그런 건데, 그런 고민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 당이 지향하는 바를 떠나서 근원적으로 국회가 과연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또 책임여당으로서 절대다수당으로서 관용의 정치를 이루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 두가지 부분에 대한 회의가 더 크죠.”

 - 홍 의원을 보면, 경력이나 삶은 엘리트·상류층 이미지가 강한데 정치인으로서의 발언은 한나라당 의원치곤 아주 리버럴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존재양식과 다르게 사고가 리버럴한 건 미국 유학의 경험 때문인가요?

 “유학생활의 경험이라기보다는 제가 지향하는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시대정신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저희 세대가 대한민국 주류가 되는 10년 후 15년 후에 뒤돌아봤을 때 후회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지 않거든요.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바는 분명히 몸통이 튼튼한 사회에요, 그렇지 않고선 선진국이 될 수가 없습니다. 지금처럼 좌,우 날개로 기형적으로 날아가는 이런 세상이 아니거든요. 그럼 그 상황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분명히 하나라도 더 가진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힘있는 사람들이 두개 내놓고 한개 가져가야 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힘있는 사람들이 내가 하나 줄테니까 너 하나 내놔라, 혹은 내가 하나 줄 테니까 너 두개 내놔라 하는 자세로 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관용의 정치로 가지 못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제가 가진 힘이라곤,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최소한으로 제 소신을 지키는 역할밖엔 못하죠.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 한국의 보수는 서구의 보수와는 좀 다른 거 같습니다. 가령 개인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그런 걸 옹호하는 게 보수일텐데, 우리나라의 보수는 민주사회의 기본 가치를 지키는 데 너무 소극적인 거 같습니다. 최근 사법판결을 둘러싼 논란도 그렇구요. 홍 의원이 보기에 한국의 보수는 어떻습니까?

 “그게 참으로 젊은 사람이 정치적 학습과 성장을 하기에 굉장히 어려운, 극복하기 힘든 난관 중의 하나입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데서 구분지어지는 이 현실을 과연 어떻게 뚫고 나가야 되는 것인가, 사법개혁도 마찬가지죠. 사법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틀을 구분짓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민주주의 원칙의 문제에요.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켜내느냐, 지금 사법제도가 잘못됐다면 제도적 개혁을 통해서 이뤄내야지 그것을 어떤 하나의 단체, 성향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학습하는 단체(우리법연구회를 지칭), 뭘 했건 간에 거기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자체가 저는 참 이해하기 힘들구요, 왜 그것이 사법개혁의 동력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그와 같이 기형적으로 나타나는 보혁 갈등과 그 보혁 갈등의 산물들…, 이것이 우리 사회를 참 혼탁하게 만들고 있어요. 안타깝죠. 그리고 또하나의 문제는, 제가 글도 썼습니다만, 사법개혁을 주장하는 주체가 우리 국회라는 사실이 저는 좀 어색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국민에게 물어보면 열명 중에 아홉명은 법원보다 국회가 훨씬 잘못했다고 생각하시거든요. 우리 스스로 염치가 있으면 스스로 돌아보고 칼을 돌려야 되는데, 우리가 먼저 법원을 개혁하자고 주장하는 건 이치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 한국의 보수가 너무 국가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으십니까?

 “아…, 아주 굉장히 좋은 포인트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분명히 우리가 지향하는 시대정신이 국가와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개인과 가정의 행복, 개성이 제일 강조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거기서 개인의 자유를 얼마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 국가가 얼마까지 풀어줄 수 있느냐 이것에 대한 심각한 논의를 해야 되는 상황이지, 어느 것이 더 국익에 부합하냐 어느 것이 더 민족의 이익에 부합하냐 라는 질문은, 뭐 북한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끝내야 되는 시점인 것 같죠.”

 - 정몽준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시면서 홍 의원을 정 대표 측근으로 분류하던데, 정 대표를 자주 만납니까?

 “저는 가족의 연(정몽준 대표는 그의 처 이모부다)으로 맺어져 있지만 정말 제가 측근이라고 불리는 건 정 대표에게 누가 되는 일이에요. 측근인 줄 알고 많은 기자 분들이 연락해오시고 하는데 저는 정무적인 사항이나 정책적 사항에 대해 정 대표님과 논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시고…. 저는 계보정치라는 것을 아예 믿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계보에 속한다는 것은 한국정치 현실에서 어떤 생존을 보장하고, 또 선거를 중심으로 생겨난 것이니까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길인데, 저는 처음부터 그걸 생각하질 않기 때문에 지금도 (정몽준 계로 불릴) 생각이 없습니다.”

 - 대선 주자로서 정몽준 대표의 장단점이 뭐라고 보십니까?

 “글쎄요…,뭐 한나라당 의원으로서 잘되시길 바라고 장점도 많이 갖추셨다고 생각합니다. 온화함이나 외교적 능력이나… 또 어떤 면에서 계보로부터 자유로운, 그런 중립적 성향이나 그런 많은 장점을 갖추셨지만 어찌됐든, 저도 마찬가지지만, 정 대표도 전학생 아닙니까? 전학생이 학생회장이 되려면 분명히 승부를 걸으셔야할 때가 올 것이고, 승부를 걸어서 MJ표 정책, MJ표 리더쉽, MJ표 비전을 보여줘야 되거든요. 지금까지 정착의 시기였다면 그것을 보여줘야 하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은 것 같아요. 승부를 보셔야죠.”

 -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연내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정상회담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우리 정부가 회담 추진상황을 너무 쉽게 오픈해 버리는 건 아닌가요?

 “연내 정상회담 가능성은, 저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저는 연초부터 그것을 주장해 왔고, 이미 미국측, 중국측 인사 특히 북한을 최근 다녀온 인사들 전언에 의하면, 뭐 북한이야 김정일 위원장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니까, 북-미 관계개선의 전제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결단을 내렸다 라는 확정적인 답들이 왔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북한에서는 오케이를 했구나, 그리고 또 그것의 전제가 될 수 있거나 후속조치가 될 수 있는 핵 포기선언까지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어떤 긍정적인 답변이 왔기 때문에 공이 우리쪽으로 넘어왔다 라고 생각을 했고, 이제 시기가 언제가 되겠느냐 했을 때, 하반기라고 얘기하는 것이 편하겠지만, 하반기는 북-미 관계개선을 원하는 김정일 위원장에겐 조금 기다리긴 힘든 시간이고, 우리 국내 정치일정을 생각하면 5월, 4월이 적합하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가능성이라고 하는 것은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저쪽에서 결단을 내려도 이쪽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못하는 것이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가능성은 100%라고 생각은 하지만 문제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 북한 비핵화는 우리 정부가 강하게 요구해온 것이고, 또 우리나라 보수층에선 ‘선 비핵화 후 정상회담’을 요구하고 있고, 그런데 북한은 핵 문제는 미국과 풀어야할 문제라고 얘기해왔고, 그래서 정부가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 비핵화를 어느 수준에서 요구해야 할지도 쉽지 않은 문제인 거 같습니다.

 “왜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한반도, 동북아 문제를 통털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고, 북한의 핵무장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의 핵무장으로 이어지고 군비경쟁을 촉발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뭐 이런 논리는 우리가 다 알고 있잖아요. 다만, 뭐 저는 참여정부 때의 내재적 접근방법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단 상대를 이기기 위해선,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핵의 필요성은 북한이 체제 수호를 위한 것인데, 체제 수호를 보장해줄 수 있는 건 남한이 아니고 미국이다 라는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대북정책을 보면은, 대북정책에서 사실상 가장 하기 쉬운 것이 원칙지키기입니다, 어려운 것이 유연성이구요. 대북정책은 원칙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북한이 비핵 선언을 한다고 해서 비핵이 되는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안정을 유지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다시 핵무장을 하려고 하는 의지를 사라지게 만들어줘야되는 것이거든요. 북한을 진짜 변화시켜야 되는 것이고, 이런 때 유연성을 발휘해야 되는 것이죠.”

 -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와 스위스 순방 때 손녀딸을 데리고 간 게 논란이 됐습니다. 청와대는 미국에선 자연스런 일이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이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이냐’고 반박했는데, 홍 의원은 이 논란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거는 민주당이 정말 쓸 데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참…, 우리 정치수준이 그대로 드러나는 건데, 저희 한나라당도 참 치졸한 행동을 많이 하지만 그 성명은 참 치졸했다고 보구요. <한겨레> 사진(<한겨레>가 1월27일치 1면에 실은, 이 대통령 부인과 딸·손녀가 인도 행사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봤는데 (손녀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준 건 참 잘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직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일인지는 고민해봐야 되지만, 기업을 경영한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충분히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는 외교적 행위의 하나였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가족이 함께감으로써 (대통령이) 훨씬 흥이 나서 더 좋은 외교를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좀 따스하게 바라봐줬으면, 조금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아주 강하게 들었습니다.”

 - 손녀를 데리고 간다는 걸 미리 공개했으면 이런 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미리 공개했다고 안 두드려 맞았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들고요, 정무적으로 좀더 매끄러웠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그것이…, 뭐 오바마 대통령이 딸들을 데리고 오고 부시 대통령이 동생을 데리고 오는 모습을 보면은 오히려 우리나라가 좋으니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고, 괜히 좋은 인상을 받았거든요. 이번에 상대 국가도 아마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외교적 성과에 대해선 아주 처절한 비판을 가하더라도, 이런 걸 문제삼는 건 치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초선의원으로 지난 1년간 국회를 보면서 어떤 점을 가장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저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서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 남에게 있고, 제도에 있고, 청와대에 있고, 사회단체에 있고, 그래선 평생 찾지를 못합니다. 우리 자신을 봐야 되는데, 지금 국회 내부의 개혁은 대부분 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저는 냉정하게 따져보면, 정말 제도의 문제인가 라는 생각이 들구요, 국회의원 개개인의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당론이 아니라 당론 할아버지가 있어도 내가 안하면 그만이다 라는 생각으로 소신과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면 이겨낼 수 있는 문제거든요. 개개인의 인식이 아직까지 그와 같은 비아냥과 싸움의 구도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이 지속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구요, 그러한 측면에서 더많은 국민들의 처절하고 치열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정치적 개혁은 몰라도 정말 올해는 제가 욕심을 많이 낮췄어요. 국회에서, 본회의장에서 서로 최소한의 예절만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야당의원이 이야기할 때 우리 여당 의원들이 비아냥거리는 거, 상대당 대표에게 ‘공중부양이나 하라’고 외쳐대는 그런 모습, 또 우리 여당 의원들이 이야기할 때 사기꾼이다 뭐 정치깡패다 이렇게 부르시는 모습들…, 일반 시장과 거리에서도 쓰지 않는 용어와 행동만큼은 국회에서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거기에서 정치개혁이 출발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국회에 들어와보니,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 같은점은 뭐고 다른점은 뭡니까?

 “생각보단 다른 점이 월등하게 많은 것 같은데…(웃음). 뭐 예상했던 점은 제가 친화력이나 스킨쉽이 많이 부족합니다. 국회 정치는 아무래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리로 하는 것이다 하는 측면에선 제가 생각했던 난관에 그대로 봉착해있는것 같고요…. 제가 생각했던 거와 많이 다른 것은, 분명히 삼권이 분리된 가운데서 국회의 고유한 역할이 있을 것이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그래서 좀 사법개혁에 대해서, 차라리 이렇게 정부하고 똑같이 가는 국회보다는 때로는 딴소리 하는 법원이 더 멋있어 보일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꼭대기에 있고 국회가 그 밑에서 보좌하는 이런 모양으로 가면은 공직에 참여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아직은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매일매일 보람을 느끼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에 시카고 빈민가에서 활동을 하면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홍 의원 이력을 보면, 화려하지만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공감대를 넓힌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옳으신 지적입니다.”

 - 그런 부분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 극복해야될 문제가 아니라 제가 언젠가 죽을 때 정말 잘살았다 라고 생각을 하겠다 라는, 그리고 공직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면 분명히 한번은 제가 몸을 던져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정치인의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옆으로 사이드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까 얘기했지만 국회는 공직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것 말고도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시대정신을 찾아서 제가 도전할 수 있는 걸 찾아내는 게, 제가 국회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그 새로운 모험을 빨리 찾아내는 게 제일 큰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 대답을 너무 명쾌하고 매끄럽게 잘하시는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겐 가식적이다 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또 어눌하게 말하면 ‘저 자식 저거 공부 많이 했다고 하더니 컨텐츠 없는 소리만 한다’고 하실 테니까….(웃음) 저 답게 해야죠, 자기다움이 중요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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