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삶속 자활근로 50대
새삶위해 술·담배 끊고
온갖 궃은일 다 했건만…
남긴 건 통장속 70만원
새삶위해 술·담배 끊고
온갖 궃은일 다 했건만…
남긴 건 통장속 70만원
지난달 27일 오후 3시20분께,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들머리. 골목을 타고 흐르는 매서운 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쓰레기를 줍던 최아무개(51)씨가 가슴이 아프다며 쓰러졌다. 동에서 운영하는 ‘자활 근로’ 중에 갑작스레 심근경색이 찾아온 것이다. 주변의 동료들이 서둘러 구급차를 불렀지만, 병원으로 옮기는 사이 최씨는 숨을 거뒀다.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이던 최씨는 서울 용산구 남영동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취로 사업에 나가 버는 돈으로 5년째 생계를 이어왔다. 근로 능력이 있는 최씨는 주민센터에서 한달 16일간 자활 근로를 하며 44만8000원을 받았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꺼려 하는 ‘잡일’이 최씨의 몫이었다. 하루 2만8000원을 손에 쥐기 위해 최씨는 청소·쌀 배달·짐 나르기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주민센터 안에 일이 없으면 동네 ‘환경미화’에 나섰다. 사망한 날에도, 최씨는 환경미화원들이 가져가지 않는 길거리 쓰레기를 치우던 중이었다.
최씨는 숨지기 전 “늦었지만 임대아파트라도 들어가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한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텨준 것은 그런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최씨는 서울시의 ‘희망플러스 통장’에 가입했다. 한달에 10만원을 넣으면, 서울시 등에서 10만원을 추가로 넣어주고 이자까지 보태 돈을 두 배로 불려준다는 통장이다. 그의 수입으로는 쪽방 월세 16만원 등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빠듯했지만, 매달 10만원씩 꼬박꼬박 일곱 달을 모아왔다. 그사이 최씨는 좋아하던 술, 담배도 끊었다.
하지만 최씨의 이런 꿈은 갑작스레 찾아온 심근경색에 허망하게 사라졌다. ‘희망 플러스통장’에는 70만원만 덩그러니 남았다. 만기를 채우지 못한 통장에는 이자도 붙지 않았다. 3년여 만에 연락이 닿은 가족들에게 최씨가 남긴 것은 이 통장과 주민센터에서 장례비로 건넨 50만원이 전부였다.
남영동 주민센터 사회복지과는 “유족들이 산업재해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려고 근로복지공단에 낼 서류 작성을 도와주고 있지만, 최씨에게 산재 보험이 적용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역 주변에서 최씨와 같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을 돕고 있는 ‘동자동 사랑방’의 엄병천 대표는 “최씨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 않고 해온 사람이었다”며 “가난한 사람들이 더 허망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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