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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이민자 시각으로 보는 MBC 사장 사퇴

등록 2010-02-08 17:44

상식과 몰상식의 혼돈
제가 이민 와서 미국에 산 것도 어영부영 20년이 가까워 옵니다. 다음달이면 20년이 되니, 한국에서 산 햇수와 미국에서 산 햇수가 거의 가까워져 온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만으로 스물 한 살이 되기 바로 직전에 미국에 왔으니까요. 어쩌면, 세상을 '인식하고' 산 기간으로만 치자면 미국에서 살아온 날이 한국에서 산 날보다 더 길다는 이야기도 될 겁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초는 우리나라에서 닦았으되, 머리통 굵어지고 나서는 미국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온 셈이지요. 이런 제 처지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제가 가진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에 어떤 분이 제게 "한국에서 살지 않으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다는 것이 모순일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해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대답은 그랬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상식'이라는 잣대가 미국과 한국이 다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습니다. 사실 세상은 그렇게 '상식'이라는 잣대에서 살아간다면 어디에서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 볼 때, 제가 어렸을 때 우리나라에서 '상식'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이곳에 와서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이 많았는가 되돌이켜보면, 그것이 바로 한국사회가 보여준 상식과 몰상식의 혼돈에서 비롯된 것들이 아니었는가 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미국에 와서 처음에 겪었던 가장 큰 문화적인 충격은 길 가면서 눈을 마주치면 사람들이 '하이' 하면서 인사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저게 왜 나한테 아는 척을 하고 난리야'라고 생각했었지요. 우리나라같으면,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눈이 마주치면, 재수 없을 경우 "뭘 갈궈. 눈 깔아, 이 색햐."하는 말이 오가다가 시비가 되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과 주먹다짐까지도 벌일 수 있는, 그런 사회분위기에서 살다가 온 제게, 이들의 인사는 제게 무척 이질적이고 낮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사회의 일원이 되면서, 그런 눈인사와 웃음은 제게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의 지금 분위기가 어떤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우리나라에 간다면, 눈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눈인사하고 웃을 수 있는 분위기일까요. 혹시 그렇게 했다가 미친 넘 취급받지는 않을까요? 그리고 보면, 우리가 믿었던 그 수많은 잘못된 '상식'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비상식적이고 몰상식적임에도 불구하고 상식으로 믿어왔던 것들은 바로 그 분단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사고는 그런 식으로 편협해지고, 그 편협성에 더해진 극한의 경쟁 상황들은 수많은 비인간적이고 몰상식적인 것들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식' 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만들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사고의 폭을 더욱 제한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MBC 엄기영 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들었습니다. 당사자로서는 얼마나 생각이 많았을까요. 그러나 이것 역시 우리나라 사회에서 횡행하는 몰상식이 상식을 몰아낸 경우의 또 하나로 기록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언론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조선일보에게 두들겨맞으면서도, 그 때의 권력은 적어도 이정도의 가시적 탄압을 내보인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에서는 대 놓고 자기 입맛에 맞는 언론엔 대주기를, 그리고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엔 직간접적인 탄압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보고 있으면, 상식이란 것이 살아있는 곳에서는 자행되지 않을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고, 그것이 상식으로 믿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이 툭하면 국가 정책의 기반이라며 내놓는 것이 '선진화'라는 화두입니다. 그러나 환경 무시하고 땅 파는 것이 선진화의 길이 될 수 없듯, 언론의 자유를 무시하고 성숙한 민주국가로 간다는 것이 선진화일 수 없습니다.

즉, '상식'을 무시하고 선진국가로, 일류국가로 간다고 하는 것은 과거 히틀러가 제 3 제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들겠다고 강변한 것이나 별 진배없는 짓거리라고 생각됩니다.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선진화엔 민주화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를 지키고 지탱하는 가장 큰 밑받침은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제대로 '상식적으로' 무엇인가가 이뤄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몰상식은 마치 상식처럼 대접받고, 비상식을 상식으로 알고 살아야만 했던 과거 독재정권의 망령은 이제 망령이 아닌 실체가 되어 한국 사회를 덮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상식을 무시하는 권력은 결국 화를 자초합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그것을 통렬하게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상식을 다시 찾아오는 힘은 결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식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됩니다. 과연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몰상식인지, 방송사 사장의 퇴진 선언이라는 사건 하나에서도 보여지는 이 '상식의 혼돈'은 우리 개인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역사 안에서 깨어 있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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