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발생한 ‘고양 금정굴 민간인 학살사건’ 희생자들의 유골이 안치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법의학연구소 창고에서 8일 오후 유가족들이 설 차례를 올리고 있다. 153구의 유골은 국가차원의 진실규명이 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15년 동안 이곳에 임시 보관되어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고양 금정굴 학살’ 유해 서울대병원에 임시보관
‘고양 금정굴 민간인 학살사건’ 유족 20여명은 올해도 어김없이 설을 앞두고 서울대병원 창고를 찾았다. 유족들이 명절 때마다 병원 창고를 찾은 것은 올해로 15년째다.
8일 오후 유족들이 과일과 약주를 올리고 ‘성묘’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법의학연구소 창고에는 한국전쟁 때 집단 총살당한 150여명의 유해가 15년째 ‘임시 보관’돼 있다. 창고에는 두개골과 머리카락 말고도 신발·비녀·단추, 학살에 사용된 탄환, 호송에 쓰인 군용 통신선 등도 보관돼 있다.
지금부터 60년 전인 1950년 10월, 고양경찰서장 지휘로 고양·파주 일대에서 치안을 담당했던 태극단원과 경찰이 부역 혐의자와 그의 가족 수백명을 적법한 절차 없이 집단 학살했다. 이 사건은 1993년 유족들과 고양지역 시민단체가 ‘9·28 수복 직후 양민이 대량 학살돼 금정굴에 매장됐다’고 주장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2년 뒤엔 금정굴에서 유골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당시 유골을 감정하고 병원 창고에 임시 보관하게 해준 이윤성 서울대 의대 교수는 “희생자 수가 최소 153명이며, 그중 10% 안팎이 여성이고 10대의 유골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05년 발족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6월 ‘금정굴 사건은 고양경찰서장 책임 아래 자행된 집단 살해이며, 그 최종 책임은 국가에 귀속된다’며, 국가에 대해 ‘유해를 봉안할 수 있는 추모시설 설치 등을 신속히 처리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이후 60년, 유해가 발굴된 지 15년, 국가 차원의 진실 규명이 이루어진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유해 안치시설 등 후속 조처는 아직 소식이 없다.
유족들은 국가기관의 권고에 따라 속히 유해 안치시설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마임순(54) 고양금정굴 유족회장은 “평생 빨갱이 가족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며 살아왔다”며 “이제 진실이 밝혀졌으니 양지바른 곳에 유해를 안치하고 우리도 남들처럼 떳떳하게 성묘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마 회장은 월북한 시백부 때문에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시숙부 등 시댁 일가 9명을 잃었다. 또 민간인 학살 현장인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 산 23-1 금정굴 일대는 굴의 침식이나 붕괴를 막기 위해 기둥 설치 등이 필요한 상태지만 당국의 무관심으로 방치돼 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과거사관련 권고사항 처리기획단의 정평호 총괄기획과장은 “2007년 진실화해위의 권고사항은 고양금정굴 단일 사건에 대한 것으로 당장 이행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올해 말 진실화해위의 종합보고서가 나오면 그 결과에 따라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정부의 종합 대책이 세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박경만, 김경욱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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