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원심 파기 환송
30여년 동안 전국의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철근 조립공으로 일한 심아무개(당시 49)씨는 2006년 5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정수장 공사일을 마친 지 이틀 만에 강원도 춘천의 댐 보조수로 공사장에서 새 일감을 얻었다.
심씨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일 밤 9시30분부터 바로 야간작업에 투입됐다. 터널 안으로 700m를 들어가 19m 높이의 천정 구조물에 길이 10m, 무게 22㎏인 철근을 조립하는 일이었다. 터널 안은 10m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어두웠고, 지하수 때문에 습도도 높았다. 굴착기 등 중장비가 내는 소음도 터널 안을 울렸다. 낮은 온도에 통풍 역시 시원찮아 저산소 상태까지 겹친 힘든 작업환경이었다.
작업을 시작한 지 3시간 반이 흐르자 심씨는 심한 오한을 느끼며 식은땀을 쏟았다. 작업반장의 허락을 얻은 심씨는 일을 접고 작업장 숙소로 돌아왔고, 이틀간 숙소에 방치됐다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출혈로 숨졌다.
심씨의 부인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등을 청구했지만, 공단 쪽은 “심씨가 다른 공사장에서 일을 마치고 이틀간 휴식을 취했고, 사고 현장에서는 불과 3시간 반 정도밖에 일하지 않아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어진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회사가 관리하는 숙소에서 심씨가 방치”된 점을 인정해 유족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업무상 과로나 급격한 작업환경 변화에 따른 사고로 보기 어렵다”며 공단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대법원 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여러 건설 작업장을 옮겨다니며 근무하는 사람의 업무상재해 여부를 판단하려면 사고 당시 사업장뿐만 아니라 이전 근무장의 업무도 함께 판단해야 한다’는 판례를 들어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예전 작업장에서는 별문제가 없던 심씨의 고혈압이 터널 안 야간작업 탓에 뇌출혈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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