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할린 조선인 학살사건
해방 직후 사할린의 극심했던 혼란 속에서 남사할린 가미시스카(현 레오니도보)와 미즈호(포자르스코예) 등에서는 일본 관헌과 민간인에 의한 조선인 학살사건이 잇따랐다.
1945년 8월8일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로 소련군이 북위 50도선을 넘어 남하하기 시작하자, 남사할린은 큰 혼란에 빠진다. 일본은 남사할린 북동부의 가미시스카와 지청이 있는 시스카 등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긴급 주민대피령을 내린다. 가미시스카 학살사건은 8월17~18일 일본인 헌병과 경찰 등이 가미시스카 경찰서에 억류돼 있던 조선인 18명을 죽이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주검을 버리거나 불태운 사건을 뜻한다. 남서부 미즈호에서도 일본인 주민들이 “조선인들이 스파이짓을 해 일본이 전쟁에 지게 됐다”는 트집을 잡고 8월20~25일 엿새에 걸쳐 조선인 27명을 죽였다.
이들 사건은 사할린 한인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구전되다 관련사건의 피해자 유족, 러시아 향토사학자 콘스탄틴 가포넨코, 일본인 연구가 하야시 에이다이 등에 의해 사건 당시 정황과 소련 쪽 재판 기록이 발굴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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