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이었던가 94년이었던가, 아무튼 미국 온 지 몇년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집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 동생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꿀렁거린다는 느낌과 함께, 오래된 가게 건물 전체에서 삐이걱 삐이걱 소리가 나며 가게 뒷편에 매달려있던 거울들이 왔다갔다 하며 불이 깜빡깜빡거렸습니다. "지진이다!" 난생 처음 겪은 지진은 솔직히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들 정도의 공포였지만, 지진은 곧 잠잠해졌습니다. 가게 카운터 앞에 줄 서 있던 손님들이 "이거, 지진이구나!"라고 말하면서 웅성거렸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겪은 지진은 조금 더 컸습니다. 그때는 시애틀이 아닌 오리건주 비버튼에 살고 있었을 때인데, 아내가 출근하고 제가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는 동안에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번엔 거북이를 넣어 놓은 어항과 TV가 옆으로 쓰러질 정도로 규모가 조금 컸습니다. 저는 얼른 아파트 문을 박차고 뛰어나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지진은 워싱턴주 올림피아 인근을 진앙으로 한, 규모가 진도 6이 넘는 꽤 큰 지진이었고, 시애틀에서는 일부 건물이 무너지고, 약간의 재산 피해가 있었습니다. 또 시애틀 사우스와 노스를 잇는 고가도로가 충격에 금이 갔다는 진단이 나와 요즘 이 다리의 철거를 두고 아직도 말이 많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만한 지진에 피해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은 이곳이 지진에 상시 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진 설계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 법률로 규정돼 있습니다. 시애틀도 바로 옆에 화산들을 끼고 있고 (마운트 레이니어와 1980년 대폭발을 일으킨 세인트 헬렌즈 화산), 이른바 환태평양 조산대에 끼어 있기 때문에 지진은 우리가 안고 살아야 할 숙명 같은 것입니다. 이미 지진 때문에 몇번 큰 피해를 입은 적도 있고, 화산 폭발로도 많은 피해를 입은 적이 있으니 그만큼 재앙이 다가올 거라는 사실에도 담담할 수 있는 거지요.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이긴 하나, 또 그런 불안을 안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서울 인근 시흥에서 지진이 났다고 들었습니다. 서울에서도 일부 느낄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사실 한국도 지진 안전지역이라고 보긴 어려울 겁니다. 지진은 무서운 재앙입니다. 아이티의 포트 오 프랭스가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상기해보면, 만일 그만한 지진이 서울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끔찍할 것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제가 시애틀에서 겪었던 정도의 지진에도 아마 서울에서는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피해가 일어날 것입니다. 과연 서울에 제대로 내진설계가 되어 있는 건물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그 옛날에 만들어진 정부종합청사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것들은 괜찮을까요? 이젠 사라졌지만, 아마 청계고가도로 같은 것이 그대로 존속했다고 한다면 그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역사 문헌에 보면, 서울이나 한반도의 다른 지역들도 결코 지진에서 자유로운 곳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에 따르면, 역사적 문헌들에서, ‘땅이 갈라지고 샘물이 솟았다’(서기 34년 경주) ‘땅이 흔들리고 초가집이 부서져 죽은 자가 백 명이나 되었다’(779년 경주) ‘한강변에 지진이 일어나 말을 먹이던 땅이 길이 24자, 너비 5자로 갈라졌다’(1385년 서울) ‘담과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많이 깔려 죽었다’(1455년 남원) 등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동반한 지진(수정 머켈리 진도 7 이상)만도 과거 2천 년간 약 40회, 다시 말해 50년에 한 번꼴로 있었다는 것이 역사 기록을 분석한 지질학자들의 주장인데, 과학자들은 과거 한반도에서 활발한 지진 활동이 있었으며, 이 활동이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한반도 안에서의 지진 발생 횟수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게 언제 닥칠 재앙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이것을 예측하려고 애는 쓰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사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런지 알 수 없는 것이지요. 또 지각운동이란 우리에겐 큰 피해를 주는 일이지만, 지구 역시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는 것이 맞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얼굴에 뾰루지가 나면 짜내는 것처럼, 지구도 지각이라는 피부에 뭐가 생기면 털어버리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우리 인간이 한없이 작아져 버리는 것 같군요.
어쨌든, 그것이 물리적인 지진이든, 아니면 인간의 정치활동에서 비롯되는 힘의 역학의 붕괴에서 비롯되는 '관계의 지진'이든, 우리는 그 모든 지진들에 대비해 있어야 할 듯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것이겠지요. 자각, 그리고 대비. 올해 6월부터, 여러분들이 투표를 통해 지진을 만들어 보시는 것은 또 어떨까요. 지진에 대비 안 된 그들이 어떻게 나올까, 참 궁금해집니다. 민의의 기왓장이 무너져 그들의 머리를 때릴 때,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 지 보고싶습니다. 지진에 대비하십시오, 그리고 지진을 만들어내십시오. 멀리서 성원하고 있는 제 몫까지.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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