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방통심의위, 공익적 글 삭제 요구는 위법”
행정소송 대상 인정…‘여론통제’ 소송 이어질듯
행정소송 대상 인정…‘여론통제’ 소송 이어질듯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의 인터넷 포털업체에 대한 블로그 게시물 삭제 요구는 행정처분이기 때문에 행정소송 대상이라는 첫 판결이 나왔다. ‘강제력이 없어 행정처분이 아니다’라고 한 기존 판결들과는 다른 판단으로, ‘인터넷 여론 통제’에 대한 법적 대응의 길이 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장상균)는 환경운동가 최병성(47) 목사가 국산 시멘트의 유해성을 지적한 블로그 게시글의 삭제를 요구한 방통심의위를 상대로 낸 시정요구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방통심의위 위원 9명은 대통령이 위촉하고 위원장 등 3명은 공무원 신분이 보장되며, 삭제 요구를 받은 업체는 조처 결과를 방통심의위에 통보할 의무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삭제 요구는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삭제 요구가 적법한지를 법정에서 다툴 수 있어야 온라인에서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어 “최 목사가 연구소에 의뢰한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공익적 목적의 글을 쓴 사실이 인정된다”며 “비방 목적의 명예훼손으로 보고 삭제를 요구한 방통심의위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방통심의위 쪽은 포털업체에 대한 ‘시정 요구’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민간 독립기구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행정청이 아니며, 삭제 요구는 단순히 권고적 효력만 있을 뿐”이라는 이유로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이번 판결에 대한 성명에서 “방통심의위의 권고는 사실상 국가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져 온 만큼, 판결을 계기로 자의적 게시물 삭제와 국가 검열이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국산 시멘트의 유해성 문제를 지적해온 최 목사는 정부의 대책 마련에 기여한 공로로 2008년 ‘교보생명환경문화상’을 받은 바 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4월 한국양회공업협회의 신청을 받아 ‘국산 시멘트 공장들이 산업폐기물을 원료로 발암물질이 포함된 시멘트를 만들고 있다’는 등의 글 4건을 삭제할 것을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요구했다. 최 목사는 글이 삭제되자 방통심의위에 이의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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