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조종사 꿈꾼 두 조선청년 ‘가미카제’ 인간폭탄으로

등록 2010-02-15 18:36수정 2010-02-15 21:42

“차츰차츰 고향 산천이 가까워온다. 일요일마다 놀러갔던 강변의 모래만이 보일까, 토끼 잡으러 갔던 그 산봉우리가 어떤 모양일까. 우리 모교의 운동장은 얼마나 크게 보이며 우리 집 뜰에는 올해도 꽃을 심었을까.”(<매일신보> 1943년 9월22일에 실린 이현재의 수기)

 앳된 얼굴의 열일곱 소년 이현재(1926~1945)와 김광영(〃~〃)을 태운 95식 연습기는 1943년 9월20일 오전 ○시 ○○비행기지를 이륙했다. 이들은 육군 소년비행병학교의 4월 입학생들로, 그동안 익힌 조종술을 뽐내기 위해 첫 향토 비행에 나선 길이었다. 이날은 미래 전력의 핵심인 항공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제가 1940년 제정한 4번째 항공절이기도 했다. 경성 곳곳에서는 기념행사와 거부들의 항공기 헌납식 등이 열렸다.

 이현재와 김광영 등 14기 육군소년비행병학교 생도들의 고향방문 소식은 당대 큰 뉴스거리가 됐다. 어려운 집안환경 탓에 배움의 기회가 적었던 식민지 조선의 소년들에게 파일럿은 고등교육과 출세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오후 12시30분 여의도 비행장에 안착한 소년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고향 집과 출신학교를 향해 날아올랐다. 김광영의 모교인 창신국민학교 학생들은 선배의 비행기가 나타나자 순식간에 운동장에 ‘창신(昌信)’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응원했다. 이현재의 모교 한영중학교는 전교생이 비행장으로 마중을 나가는 소동을 벌였다. 22일치 <매일신보>에 실린 이현재의 고향방문 수기를 보면, 꿈에 그리던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날아오르는 10대 소년의 달뜬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두 소년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2년 뒤인 45년 5월13일, <매일신보>는 ‘염원은 거함의 격침. 담담한 대의에 순하는 심경’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재작년 9월 그립던 향토방문 비행으로 경성의 하늘에 그 용자를 나타내었던” 두 소년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기사에서 둘은 “어찌하면 적의 큰 함선을 굉침시킬까? 이것만이 내가 소년비행학교에 들어간 뒤부터의 염원이었고, 또한 내가 육탄공격을 할 때까지의 염원일 것”이라고 작전에 나서기 직전의 각오를 밝혔다.

 김광영은 기사가 보도된 2주일쯤 뒤인 5월28일, 이현재는 그 다음날인 5월29일 연합군 함대에 육탄공격을 감행하다 숨졌다. 일제는 이들을 오장에서 소위로 세 계급을 추서했고,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 ‘히로오카 겐사이’(이현재)와 ‘가네다 미쓰에이’(김광영)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했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는 잊혀진 존재가 됐다. 이현재의 조카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와의 면담에서 “이현재의 부모·형제는 모두 숨졌으며 우리는 (삼촌의) 강제동원에 대한 사실을 잘 모른다”고 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