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서울대교구장이 된 이후 2007년까지 해마다 1월1일을 전진상교육원에서 아피 회원들과 지낸 고 김수환 추기경이 어느해 신년 하례식이 끝난 뒤 회원들과 춤을 추며 여흥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 맞은 가톨릭단체 ‘아피’
서울대교구장 된 뒤 새해첫날엔 항상 함께보내
87년 명동성당 피신한 시위대 지원물품 운반도
서울대교구장 된 뒤 새해첫날엔 항상 함께보내
87년 명동성당 피신한 시위대 지원물품 운반도
“추기경님이 선종하시기 한 달 전쯤 문병을 갔는데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애모’도 부르고, ‘친구’도 부르고…몇 곡 불러 드렸더니 누워서 손뼉을 치시며 환하게 웃으셨는데….” 지난해 2월 평생 나눔과 사랑을 설파한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누구보다도 슬펐던 이들은 평신도로 이뤄진 국제가톨릭단체인 아피(AFI·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들이었다. 김 추기경의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아피 회원들은 김 추기경과의 각별한 인연을 되새겼다. 회원 김정옥(72)씨는 “엄격함보다는 아버지같은 자상함이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추기경님의 모습은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대중가요를 즐겨 부르는 우리 시대 보통의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회상했다. 윤석인(70)씨와 박공자(66)씨도 “그날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추억에 젖었다. 김 추기경은 1969년 서울대교구장이 된 이후 2007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1월1일을 명동성당 뒤편에 있는 아피의 근거지 ‘전진상(全眞常) 교육원’에서 보냈다. 김 추기경이 아피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때는 68년, 당시 명동성당 성탄 미사 전에 빈민지역을 직접 찾아가 미사를 할 만큼 소외된 이웃에 대한 보살핌이 각별했던 김 추기경은 ‘전진상’을 기본교리로 삼은 아피를 종교적 믿음에 개인적인 이상까지 얹어놓은 인생의 동반자로 여겼다고 한다. ‘전진상’은 아피의 정신인 온전한 자아봉헌(全), 참다운 사랑(眞), 끊임없는 기쁨(常)을 뜻한다. 이후 김 추기경과 아피 회원들은 조용히 손을 잡고 마음 속 교리를 실천해 나갔다.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으로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람들을 정치적 탄압에서 보호하고 이들과 전진상교육관에서 함께 생활했다. 87년 민주화운동 당시 성당으로 숨어든 시위대를 품었던 김 추기경과 아피 회원들은 전진상교육관을 통해 명동성당으로 시위대를 위한 물품을 날랐다. “외부의 탄압이 한창이었을 때라도 우리는 추기경님과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략을 짜거나 의견을 나눈 일은 없습니다.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우리가 하는 일이 ‘인간해방을 위한 길’이라는 사실은 우리 눈에도 추기경님의 눈에도 명백한 진리였습니다. 교인으로서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것이었죠.” 김정옥씨는 김 추기경은 이제 곁에 없지만 아피 회원들의 ‘실천’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1938년 벨기에에서 창설된 아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40여 나라에서 300여명이 활동 중이다. 외국인 2명을 포함해 모두 40명인 한국 아피 회원들은 각자 재능에 따라 성폭력 피해 여성 상담과 장애인·독거노인·이주여성을 위한 단체 등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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