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5일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2년을 맞습니다. <한겨레>는 이명박 정부 2년을 평가하고,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펴보는 다양한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번째로 진보학계의 분야별 정책 평가를 싣습니다. 내일부터 국민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짚어보는 기획과, 국정운영 방식 및 통일외교·미디어 정책의 공과를 분석하는 기획기사가 이어집니다.
이명박 정부 2년 평가와 3년 전망 [첨부파일 보기]
■ 기조연설
민주정치 위기맞고 시장주의 활개
“사람들이 기본권을 박탈당한 채 죽어가는 사회에서 어찌 국가의 품격을 말할 수 있는가.”
‘한국사회,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는 이명박 정부 2년을 ‘민주주의의 위기’와 ‘시장만능주의의 확산’이란 말로 정리했다.
도 교수는 “우리를 좌절하게 하는 것은 집권 세력이 과연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이라며 “지난 2년간 우리가 확인한 것은 이 정부가 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 실행의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학습되고 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강조하는 법치주의에 대해서도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폭력을 비호하고, 생존권을 박탈당한 약자들이 호소할 곳이 없어 하느님한테 편지나 쓰고 있어야 할 때 정부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라고 되묻고 “법이 정의에 반하지 않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법과 정의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만이 ‘법과 질서’란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시장프렌들리’에 대해서는 “시장이 얼마든지 반사회적이고, 사회파괴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는 “시장은 방치할 경우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모든 것을 시장의 메커니즘 안으로 복속시킨다”며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삶과 사회와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는 공공성의 이름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 국정운영
‘친서민 중도실용’ 내세워 지지율 견인
국민을 우호적인 세력과 비판적인 세력으로 나눠 대처하는 ‘두 국민 정치’.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통치 방식’을 이렇게 압축하고, 이 틀에서 지난해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을 분석했다.
그는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이 지난 1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전환점을 제공하고,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을 상승시킨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를 두고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으로의 전환이라고도 해석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50%를 웃돌았던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도를 ‘원상회복’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성과가 너무 초라해서 2009년의 (국정운영 지지도) 성적표가 돋보였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며 “2007년 대선에서 받은 지지율을 다시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동시에 민주주의의 후퇴에 주목했다. 그는 “정치사회학적으로 볼 때 친서민 중도실용과 민주주의 후퇴는 일종의 동전의 양면을 구성한다”며 “촛불집회 대응, 용산참사, 미디어 관련법 파동 등은 (민주주의 후퇴의) 상징적 사건들로, 문제의 핵심은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로 후퇴할 때 체험하게 되는 위기감이 과거 권위주의 시기에 체험한 위기감 못지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결단력’과 ‘추진력’을 지닌 ‘성취 지향적 리더십’으로 규정하고 “(이 대통령이) 일의 절차와 과정보다는 결과와 효율을 중시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보수세력에 맞선 진보·개혁세력은 “대안 정치세력으로서 국민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는 ‘반엠비(MB)연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보개혁적 성향의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 ‘새로운 진보개혁’의 구체적인 콘텐츠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의 경제·사회적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살림의 정치’, 소극적 반대를 넘어선 적극적 대안으로 ‘반엠비, 살림연합’을 제시했다.
토론에 나선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는 치밀하고도 집요한 ‘좌파 적출 수술’을 감행하고 있다”며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의 인사 교체를 넘어 방송사를 장악한다거나, 문화계·영화계, 개별 방송인이나 대학교수에 대해서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찍어내기’와 ‘불이익 주기’가 횡행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권 2년 동안 기득권 이익 실현을 위한 과격한 개혁을 단행했다”며 노골적인 재벌 몰아주기, 고용유연성 강화, 조직노동의 무장해제, 부동산 폭탄 문제 등을 비판했다. 그는 좋은 정부 수립을 위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 국내정치
뒷걸음 정당정치, 지방선거가 심판대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국회파행→국민 불신·혐오=정당정치 퇴행
정해구 교수(성공회대)는 16일 이명박 정부 2년의 정당정치 현실을 이렇게 압축했다. 그는 발제에서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은 매우 자의적·편파적이고, 밀어붙이기식의 국정운영은 국회 파행, 정당 정치의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우리의 정당정치는 퇴행했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6·2 지방선거의 ‘열쇳말’로 ‘집권정당에 대한 중간평가’와 ‘개혁·진보진영의 연합공천·후보단일화’를 꼽았다.
그는 앞선 4번의 지방선거를 분석한 결과,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이번 지방선거는 집권여당에 대한 ‘징벌적 성격’은 아니라도 ‘중간평가적 성격’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교수는 “야당 및 진보·개혁세력의 ‘견제론’과 함께 여당 및 보수층의 ‘안정론’, ‘지역발전론’이 함께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역대 지방선거에서와 같이) 개혁·진보진영의 연합공천 및 후보 단일화가 그들의 승리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며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신진욱 교수(중앙대)는 토론에서 “(진보·개혁진영은) 두루뭉술한 ‘반민주·반민중 정권’이라는 슬로건이 아니라 시민들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구체적인 이슈를 가지고 초점있는 비판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진보·개혁진영의 연합은 필요조건”이라며 “시민사회로부터의 관심과 여론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도록 시민이 선거의 주인공으로 나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진보·개혁진영의 ‘자기성찰’도 주문했다.
김지은 기자
■ 대외관계
‘썰렁한 대북관계’ 중국만 어부지리
이명박 정부가 지난 2년간 남북관계에서 보여준 ‘소극성’을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선수임에도 관중처럼 행동했다”는 말로 요약했다. 이런 소극성은 정권 핵심인사들이 갖고 있는 “협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하는데, 그 결과 “지나치게 이념지향적이며 전략적 우선순위가 없을 뿐 아니라, 정책의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도 없는” 단기 처방들만 양산되고 있다는 게 김 소장의 판단이다.
이로 인한 문제는 남북대화의 냉각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김 소장은 최근 지리적 이점과 정치 관계의 안정에 힘입어 급진전되고 있는 북한·중국의 경제협력에 경각심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북중 경협의 진전은 남북 경제공동체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통일비용의 증대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남북 경협이 지금처럼 주춤거린다면, 중국 중심의 새로운 동북경제권 형성은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의 앞길에 힘겨운 도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답보상태에 빠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와 관련해서도 김 소장은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의 조건과 절차는 무엇이며, 평화협정의 당사자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정부 방침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결 기조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화를 활용하는 수준”이라며 “그럼에도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는 것은 그것이 ‘원칙을 견지함에도 북한의 굴복을 얻어내고 있다’는 ‘착시’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 스스로 정책 기조를 전환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상, 방법은 지방선거 등을 통해 확실한 충격을 안기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이명박 정부 집권 2년을 평가하고 3년을 전망하는 토론회에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윤홍식 인하대 교수, 김성환 미래발전연구원 기획실장, 홍종학 경원대 교수, 이태수 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이상이 제주대 교수, 박용신 환경정의 사무처장,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경기부양·국토개발 ‘몰입’ 서민복지 ‘후들’
■ 경제정책
‘토목건설 중심’ 벗어나 ‘일자리’ 우선해야
2008년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저금리 정책 기조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비켜갔다. 하지만 경제 외형지표는 고용 부진과 실질소득 감소, 가계부채 증대 등으로 시름이 깊어진 서민들의 체감경기와는 괴리가 크다.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을 맞으면서 기존 토목건설 중심 성장주의에서 고용 확대를 통한 성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16일 ‘이명박 정부 2년 경제와 3년 방향’을 발제한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은 “정부가 단기적으로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외형지표를 끌어올렸지만 경제회복 정책들이 대부분 단기 실적주의에 근거한 것들이어서 지속성을 갖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2분기 이후 브이(V)자형 회복 곡선을 보이며 빠르게 반전하던 경기회복 기조가 4분기부터 상승세가 상당히 둔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성장기반 확충 등 중장기적 경제정책의 부재로 집권 후반기엔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 부원장은 무엇보다 경기회복 과정에서 국가 및 가계부채가 늘고 고용 사정이 악화된 데 주목했다. 지난해 경기회복 과정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금융권 및 기업의 부채와 부실이 정부와 가계로 전이됐고, 이런 현상이 올해 한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금융부실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채로 떠안았고 기업들이 경기를 이유로 단행한 구조조정과 임금삭감 조처는 가계의 부실로 이어졌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의 대규모 토목건설 위주 경제정책은 국가 및 공기업의 부채를 키우고 있고 인위적 부동산 경기부양이 가계부채마저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김 부원장은 국가채무가 빠른 속도로 증가해 올해 4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라는 점과 가계부채 규모가 지난해 3분기까지 700조원을 넘겼지만 소득 감소로 상환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고용 여건의 악화는 지난 2년 동안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경제정책 가운데 가장 실패한 정책의 결과라고 김 부원장은 평가했다. 그는 “정부의 재정 투입에 의한 단기 일자리 대책의 만료 시한이 다가오지만 민간부문의 고용 창출로 이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대통령 스스로도 1~2년 내에 일자리 사정이 좋아질 것이란 말은 정치구호에 불과하다고 고백할 정도로 상황은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 부원장은 “국내총생산이 증가하고 기업 실적이 올라가면 고용도 호전될 것이라는 가정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부가 깨달아야 한다”며 “고용 창출을 통한 가계소득의 안정적 증대를 위해 대대적 고용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고용률 60% 회복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해 경제정책 및 재정 투입을 집중하고 사회서비스업 등에서 공공부문 고용의 역할을 늘릴 것을 제안했다.
토론자로 나선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는 “정부 경제정책이 대공황을 초래한 1920년대 미국 공화당 정권이 추구하던 방식과 비슷할 정도로 시대착오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홍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부유층이 잘살아야 빈곤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취지로 감세와 친기업 정책으로 일관한 결과 서민층의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졌다”며 “미래 성장기반 확충과 함께 고용 및 복지 영역에서 터져나오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전방위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 복지정책
‘부자 감세’ 지속해 복지국가 훼손
프랑스가 글로벌 경제위기의 타격을 덜 받았던 배경엔 적극적 재분배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갑작스런 외풍에도 내수경기가 그나마 버틴 덕분에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하면서 저소득층의 몰락을 막아줬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프랑스의 재정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55.6%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감세 정책으로 재정 규모를 축소시키고 있어 복지 국가로 가는 길에서 더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 2년을 평가하는 토론에서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고소득층에 대부분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로 정부 재정이 줄어들어 복지 확충에 반하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현 정부 뿐 아니라 차기 정부의 복지투자 확대에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다. 이 교수는“저출산 및 고령화 등으로 복지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지만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이루어질 감세 규모가 무려 72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이 교수는 또 “의료와 보육, 교육, 노인요양 등에 자본과 시장의 영역을 확대하고 금융자본의 투자처로 삼으려는 이명박 정부의 시장국가 기조가 현실화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가칭)‘사회복지세’ 등을 신설해 복지 재정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인 공적 소득보장 제도에 대한 정부 재정 투입이 절실하다”며 “한 예로, 고용보험은 까다로운 수급요건을 채우지 못한 이들은 아예 혜택을 볼 수 없는 데다 65살 이상 인구 가운데 국민연급 수급자의 비율은 22%(2008년 기준)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와 복지 확대를 동시에 추진할 공통 분모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 정부 복지정책의 가장 큰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또 시민사회 내부의 자성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 유럽 국가들이 복지국가로 도약할 때와 달리,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 강화 및 노동운동의 고립 등 악조건 속에서 친복지진영도 구체적인 정책 대안 제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 개발정책
4대강·세종시 갈등에 국토·국민 두동강
“2년 새 20년을 후퇴시켰다.”
박용신 환경정의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초래된 환경정책의 역진과 퇴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 처장이 무엇보다 문제삼은 것은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세종시 수정론에서 드러난 개발지상주의다. 두 정책은 국토의 불균형 발전을 한층 심화시키고, 수십 년 동안 갖은 시행착오를 겪고 외국의 선진 사례를 참조해 만들어낸 합리적 개발 시스템을 붕괴시킨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게 박 처장의 평가다.
4대강 사업이 이른바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 사업이라는 정부의 의미 부여 역시 근거 없는 억지일 뿐이다. 안정적 수자원 관리를 명분으로 “전국의 하천을 콘크리트로 뒤덮는 ‘회색의 파괴사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는 안정적인 물 확보를 위해 4대강 사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해 “도시지역은 과잉 설비로 인한 투자의 비효율을 발생시키고, 농촌지역에선 투자를 외면해 수인성 질병을 불러오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반박하는 한편, 홍수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선전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피해가 태풍의 통과 경로와 백두대간 산악 효과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세종시 수정론 역시 박 처장이 볼 때는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비효율에 눈감고, 철저하게 수도권 권력만을 중심으로 국토정책을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수정론이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입각해 있을 뿐 아니라, 수도권 과밀해소와 지방분산 같은 균형발전효과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수정안은 결국 세종시의 ‘빨대효과’로 인한 지방 특화도시의 고사, 과도한 기업 특혜로 인한 정부의 재정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론에 나선 김성환 미래발전연구원 기획실장은 “4대강 문제는 과거 한나라당의 사학법 개정 투쟁처럼 야당이 명운을 걸고 저지에 나섰어야 했는데,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다”며 “시민사회가 2000년 총선 당시처럼 4대강 찬성 후보자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여서라도 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선 “논쟁이 박근혜 대 이명박의 대립구도로 흐르면서 본질인 수도권 과밀해소란 의제가 실종돼 버렸다”며 “이 문제는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에 출마하는 진보개혁진영 후보가 한나라당과 차별화되는 지역발전 비전을 제시해 돌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세영 기자
■ 종합토론
토론회는 1·2부가 끝난 뒤 ‘종합토론’으로 이어졌다. 종합토론의 기조 발표는 김형기 경북대 교수(좋은정책포럼 대표)가 맡았다. 종합토론에는 고성국(정치평론가·사회) 이남주(성공회대 교수) 이상현(2010연대 운영위원) 장유식(민주통합시민행동 공동상임운영위원장) 정윤재(시민주권 지방자치기획단장) 하승창(희망과대안 상임운영위원) 박창식(한겨레 논설위원)씨가 참여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진보, 성장 배제하면 승산 없어
기조발표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중도실용’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집권 초기의 실패를 넘어서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온건 케인스주의자 정운찬 총리가 정책적 입장을 고수한다면 신자유주의적 엠비(MB)노믹스와 케인스 경제학이 동거하는 ‘보수적 제3의 길’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가 성장을 배제한 채 분배·복지·생태를 일방적으로 강조해선 승산이 없다. 대중은 경제성장을 일자리 창출과 실생활의 욕구 증진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지향점은 ‘지식’과 ‘녹색’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지식기반 녹색경제’다. 이런 진보적 성장론은 이념적으로 ‘사회자유주의’와 친화적이다. 외환위기 이후 영미형에 가까운 시장모델로 재편된 한국 현실을 고려한다면 사회민주주의보다 사회자유주의적인 중도진보가 집권 가능성을 높이는 현실적 노선이다.
만약 진보진영이 사회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중도진보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근본진보로 분화하면서 전자가 민주연합을, 후자가 진보연합을 지향한다면, ‘민주-진보 연정’이란 구상 아래 범진보세력의 연합을 전망해볼 수 있다. 이런 사회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동맹 구상은 민주주의 확대와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공동 강령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중도실용’은 전략적 선택이다 - 부자감세 등 기본 변화없다

고성국: 논쟁적 발제였다. 지방선거를 앞둔 진보개혁 세력의 전략적 선택과 관련해 핵심 지점을 잘 짚었다.
박창식: 이명박 정부의 ‘중도 실용’이 정책기조의 수정이라 보기엔 부자감세, 금융·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 등 엠비노믹스의 기본정책의 변화가 없다. 단지 새로운 정책패키지를 얹어놓은 상태에 불과하다. 지지율 상승은 정책기조 수정에 따른 효과라기보다, 홍보나 정치 마케팅에 집중 투자한 결과로 보인다.
이남주: 진보세력과 민주세력의 연합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뭉쳐야 한다는 논리라면 문제가 있다. 연합은 우파가 지나치게 비대한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과 세력관계를 고려할 때 민주적 과제와 진보적 과제를 결합시켜야만 의미있는 동력을 형성할 수 있다는 구조적 인식에 바탕해야 한다.
이상현: ‘민주-진보 연합’ 구상엔 동의하지만, 민주당을 중심으로 중도진보 연합을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역학관계와 이념지형을 고려하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이 중도진보 진영을 형성하고 민주당은 조금 왼쪽으로 이동해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하승창: 민주-진보 연합은 단순한 선거전술이 아니라 새로운 진보의 주체 형성을 위한 선택이 돼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이 좌나 우로 조금씩 수평 이동하는 것만으로 이게 가능하겠는가?
정윤재: 방향에 대한 논의는 물론 중요한데,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난 정부 시절 제시한 혁신주도형 동반성장론을 보자. 의미있는 성장방안이라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했다. 하지만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내용에서 초보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연 다른가?
장유식: 보수는 나눠먹을 게 있으니 밥상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반면 진보는 나눌 파이가 없으니 선명성을 내세우다가 분열한다. 지금 진보진영을 보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으로 분열된 그들에게 과연 나눌 파이가 있는가. 일단 진보연합을 통해 파이를 만들어야 한다.
고성국: 연합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온도차가 느껴진다.
이상현: 민주당이 전략적 차원에서 좀더 양보해야 한다. 현재 진행중인 ‘5+4’ 테이블은 단순한 선거연합이 아니라 한국적 연합정치의 실험이란 인식을 가져야 한다. 민주당이 내놓을 양보의 폭과 정책연합의 수위가 그 실험의 성공 여부를 가늠케 할 것이다.
장유식: 2007년 대선 국면에서 정동영·문국현 두 후보 가운데 한쪽이 양보했으면 훨씬 큰 판을 벌일 수 있었다. 지금의 양보가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인식이 절실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양보한다면 2012년 집권에 플러스가 된다.
정윤재: 연합을 위한 고민 못지않게 중요한 게 6월 이후의 상황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진보·개혁세력이 공동으로 지방자치 정책지원센터 같은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하승창: 연대는 어느 한쪽의 양보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어떤 정치세력이 리더십을 발휘하느냐도 중요한 요소다.
박창식: 연합을 위해 민주당은 진보적 방향으로 움직이고,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오른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보정당의 입장에선 소금의 짠맛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남주: 연합을 한다고 정체성이 없어지진 않는다. 바라는 건, 논의가 좀더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당이 어떤 요구를 하는지를 국민들이 알고 그것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김형기: 민주-진보 대연합을 위해선 편협한 정파적 입장을 극복해야 한다. 분열을 하는 어떤 정파에 대해서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시민사회의 의지가 필요하다. 시민단체가 정치권 바깥에서부터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리 이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