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 안에 친일파 득세…인민은 생활고 신음…”
서울대 석사과정 정무용씨
미 국립문서관리청서 입수
서울대 석사과정 정무용씨
미 국립문서관리청서 입수
“군정 안에는 과거 친일파였던 악질관리들이 모리배들과 결탁해 사리사욕에만 몰입하고 있습니다.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고 물가는 폭등해 인민은 극도의 생활고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1947년 해방기 한반도의 혼란상을 고스란히 담은 민중들의 편지가 국내 처음으로 공개됐다.
16일 서울대 국사학과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정무용(28)씨는 1947년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특사로 방한한 웨드마이어 사절단이 당시 한국인들한테서 받은 편지 450여통을 공개했다. 이 편지는 웨드마이어가 해방 뒤 남한의 사회상을 자세히 알기 위해 각계각층의 한국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해 받은 것으로, 정씨는 2006년 미 국립문서관리청(NARA)에서 이 편지들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편지는 무명씨부터 국학자 정인보 등 저명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이 보냈다. 정인보는 “공산주의자들은 애국적 민족주의자들과 힘을 합쳤다”며 “해방 후에도 공산주의의 애국적 이미지가 민중적 지지를 이끌었지만, 신탁에 찬성한 이후부터 민중으로부터 멀어졌다”고 지적했다.
당시 민초들은 우익이 주도한 테러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한 민초는 “독청(대한독립청년단), 광복청년회, 청총(조선청년총동맹) 등 테러단을 즉시 해산해달라. 좌익이라 하여 집을 접수하며 아버지를 떼려 입원 가료중”이라고 적었다.
정씨는 편지 분석을 바탕으로 ‘1947년 웨드마이어 사절단의 방한과 한국인의 대응’이라는 제목의 석사논문을 썼다. 그는 논문에서 한국인의 호소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 사절단이 냉전 구도에서 우익을 선택하려고 민중들이 제기한 문제를 묵과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 상원 군사위원회는 1951년 ‘우익이 한국 민중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부분을 빼고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1972년 이를 되살려 재발간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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