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사건 재심 무죄’ 맞받아치는 검찰
최양준·고 장석구씨 등 무죄판결에 상소…과거사 반성 ‘모르쇠’
최양준·고 장석구씨 등 무죄판결에 상소…과거사 반성 ‘모르쇠’
검찰이 기존의 ‘관행’을 깨고 최근 시국사건 재심 무죄 판결에 불복해 잇따라 상소하고 있다. ‘과거사 정리’를 백안시하던 검찰의 이런 행태는 ‘수십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이들의 상처를 더 깊게 한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검찰은 주변의 모함 탓에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으로 몰렸다가 20여년 만에 서울고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아무개(71)씨 사건에 대해 지난 12일 상고했다. 서울고법은 재심에서 구치소 의무기록을 통해 김씨가 척추타박으로 통증을 호소하고 진통제를 맞은 사실 등을 확인하면서 원심 판결에 대해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김씨 주장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을 그대로 유죄 증거로 삼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검찰은 앞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했다’는 죄로 1983년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가 27년 만인 지난달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양준(71)씨 사건도 항소했다. 또 ‘인혁당 재건위’ 사건 연루자를 숨겨줬다는 이유로 1974년 유죄를 선고받고 이듬해 옥사한 장석구(당시 48)씨 사건도 항소 절차를 밟았다.
검찰은 고문 여부가 불분명하거나 원심 과정에서 증거에 동의한 점 등을 이유로 든다. 검찰은 최씨 사건에 대해 “‘임의동행 후 구속’은 당시 수사 관행으로 보이고, 원심 법원이 최씨의 가혹행위 주장을 배척했다”며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는 주장만으로 (당시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씨 사건에 대해서도 “원심에서 장씨가 증거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시국사건 재심 판결에 상소하지 않는 관행을 버린 것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태도와 일맥상통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과거사 청산’이 화두이던 참여정부 때 국가정보원이나 경찰청과 달리 과거사 정리를 회피하면서도 시국사건 재심 판결에는 대부분 상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강기훈씨 유서 대필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하자 장문의 항고이유서를 통해 반박하며 적극 대응하는 태도 변화를 보인 바 있다.
재심 청구인들이 고문 등 국가 폭력에 희생된 증거가 드러난 상황에서 단지 ‘당시에 범행을 자백했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심 재판부들은 ‘원심 법정에서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거나 ‘고문 등으로 임의성이 없는 심리상태에서 자백했다’는 점 등을 유죄 판단을 뒤집을 주요 근거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75년 옥사한 장씨의 경우, 그가 숨겨준 인물로 지목된 이아무개씨는 이미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그런데도 검찰은 장씨에게 죄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씨는 “무죄 선고로 그나마 풀리려던 응어리가 (검찰의 항소로) 다시 맺히고 있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개별 사건마다 사안이 다 달라 심리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 항소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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