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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빗자루 도사’ 검술, 세계 무림계 도전장

등록 2010-02-21 19:03수정 2010-02-21 22:18

민족경당 24반무예협회 총재 임동규(71)씨가 지난 19일 광주시 광산구 지산동 탑동마을 전수관 2층 방에서 조선 무예의 전승 맥락을 설명하고 있다.
민족경당 24반무예협회 총재 임동규(71)씨가 지난 19일 광주시 광산구 지산동 탑동마을 전수관 2층 방에서 조선 무예의 전승 맥락을 설명하고 있다.
통일운동가 임동규씨 ‘무예도보통지’ 영어번역
전승 끊긴 ‘군사훈련용 병서’ 무기수 시절 10년 걸려 복원
사범급 제자 200여명 길러내 건강 나빠져 지인들 모금운동




2㎡의 감옥 안이 유일한 수련장이었다. 빗자루를 들고 검법을 익혔다. 조선시대 어명에 따라 편찬된 <무예도보통지>가 스승이었다. 문헌으로만 남아 있을 뿐 전승이 끊겼던 조선 검법의 복원이 목표였다. 창·검·마장술 등 무예도보통지에 든 24반 무예를 완벽하게 복원하기까지 무려 10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그에겐 어느새 ‘빗자루 도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절 임동규(71)씨는 우연히 사학을 전공한 친구한테 무예도보통지(752쪽)를 소개받았다. 광주에서 광주 서중과 일고를 거쳐 서울대 상대에서 공부한 그는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총무부장으로 재직하던 1978년께였다. 무예도 보통지는 정조의 명으로 이덕무(1741~1793)와 박제가(1750~1805) 등 실학자와 서얼 출신의 조선 최고 검객으로 불리는 백동수(1743~1816) 등이 1790년에 완성한 군사훈련용 병서다. 이 책엔 조선의 자주국방이라는 꿈이 스며 있다.

임씨는 1979년 10월 ‘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감옥에 들어간 뒤 이 책을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자그마한 체구였지만 뚝심이 있어 고교 시절 유도부에서 동년배들을 가르칠 정도로 무예를 좋아했다. 그는 “누구도 (무예도보통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고 하니 징역 사는 김에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검법 복원에 도전했다. 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무기형을 받고 수감 중 또 다시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무기형을 받아 ‘쌍무기수’로 불렸던 임씨는 감옥에서 빗자루를 들고 수련에 열중했다.

임씨는 1988년 12월 가석방으로 나온 뒤 고향인 광주시 광산구 지산동 탑동마을에 전수관인 민족 도장 경당을 설립하고 24반 무예협회를 설립했다. 무예를 통해 민족 공동체와 자주성을 회복하자는 운동이었다. 5년전까지도 직접 제자들을 가르쳤던 그는 사범 수준의 제자 200여명을 배출했다. 24반 무예 동호인은 노르웨이·엘살바도르 등 해외까지 모두 1만여명에 달한다. 2006년께부터 무예도보통지 영어 번역에 도전해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임씨는 “24반 무예는 무술로서도 상당히 우수하다고 생각해 국제사회에 당당히 우리 문화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그는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지난해부터 수형 생활의 후유증으로 좌골신경통이 생겨 걷기가 불편하다. 4년전께 부인과 헤어진 뒤 혼자 살고 있는 그는 전수관마저 경매에 넘어가 좌불안석이다. 기초수급자에게 다달이 나오는 지원비 중 절반은 늦둥이 딸(고1)에게 보낸다. 반독재 투쟁을 함께 해온 이들의 모임인 ‘광주민주동지회’는 최근 임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해듣고 300만원을 모아 전달한 뒤 지인들을 상대로 임동규 선생 돕기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탑동마을 전수관 2층 거처에서 만난 임씨는 낡게 바랜 무예도보통지를 펼치며 전통 무예의 맥을 설명했다. 난방이 되지 않아 썰렁한 방엔 인문서와 병서 수백권으로 책장에 빼곡했다. 임씨는 “역사에서 사라질뻔한 조선의 무예를 복원했다는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와 동행한 박동기(57·남녘현대사연구회 회장)씨에게 “나가서 막걸리나 한잔 하자”고 했다. 어스름 저녁 삐걱거리는 철제 계단을 힘겹게 내려가는 그의 오른 손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010)9659-0022.

글·사진/광주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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