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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배삼룡 씨 아들 “끝까지 무대 갈망하셨다”

등록 2010-02-23 10:10수정 2010-02-23 10:19

고(故) 배삼룡 씨는 병상에서도 끝까지 무대에 다시 서기를 꿈꿨다.

고인의 외아들인 동진 씨는 23일 전화 통화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두 달여 의식이 없었는데, 그전까지는 꼭 회복해서 무대에 다시 서기를 갈망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아버지는 의식이 없어 유언도 남기지 못하셨다. 지난해 말 의식이 있을 때 '다시 무대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신 게 결국 마지막 말씀이 됐다"고 덧붙였다.

배삼룡 씨는 2007년 6월30일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이래 집에는 돌아가지 못했다. 흡인성 폐렴으로 투병하던 그는 중환자실을 몇 차례 오가며 힘겹게 병마와 싸우다 결국 이날 오전 2시10분 8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새해를 세 번 맞이하셨어요. 좀 더 잘 모셔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해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자식으로서 죄송스럽습니다. 평소 건강 체크를 잘해 드렸어야 했는데…."

그는 고인이 여느 아버지와는 다른 아버지였다고도 말했다.

"다른 아버지는 가족이 우선이었지만 우리 아버지는 무대가 우선이었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이 너무 많으셔서 항상 가족의 희생이 따라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어렸을 때는 많이 섭섭했고 학교에 가면 '비실이 아들', '개다리 춤 춰봐라' 등 놀림을 많이 받아 상심이 컸고 많이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의 명성에 먹칠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속으로는 항상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으니까요."

'비실이' 배삼룡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1969~1970년대는 가족 나들이도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 달에 20일은 공연을 나가셔서 얼굴을 뵙기도 힘들었는데, 그래도 한 달에 하루 정도는 자식들을 위해 시간을 내주셨어요. 하지만, 그런 날 놀이동산에라도 가면 입구에서부터 아버지를 뺏기고 말았어요. '와 배삼룡이다'라며 사람들이 달려들어 저희는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먼발치에서 아버지를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는 우리를 낳아주셨지만 결국은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고 모든 사람의, 팬들의 아버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은 현재 고인의 기념비 건립을 계획 중이다.

동진 씨는 "후원해주시는 분이 계셔 아버지의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디자인과 문구,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시신은 화장 뒤 분당 추모공원 휴에 안치될 예정이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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