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화 중에, 사람들이 "다르다"고 해야 할 곳에서 "틀리다"고 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본다. "걔네들은 우리랑 틀려."라거나, "이 집, 이 거... 주방장이 바뀌었나. 예전하고 맛이 틀리네." 라는 식의 표현은 거의 매일 사방에서 난무한다.
아무리 단어에도 생로병사가 있다지만, 그래도 이건 문제가 심각하다. 다름과 틀림은 그 뜻이 전혀 다른데, 왜 사람들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이헤하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또한 그렇게 말할까?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으나, 10년이나 20년 전에 비해 다름과 틀림의 혼용이 훨씬 더 심해진 것 같다. 솔직히, 요즘엔 혼용의 차원을 넘어, 마치 일제가 대한제국을 꿀꺽 병합해버렸듯이, "틀리다"는 말이 "다른다"는 말을 거의 먹어버린 게 아닌가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틀리다"는 말이 홍수를 이룬다.
"다름"은 비교의 대상과 같지 않다는 뜻이고 (different, diverse), "틀림"은 정당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wrong, incorrect) 사실, 시험을 보듯이 정색을 하고 두 단어의 차이를 물어보면, 대개 다들 그 차이를 제대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일상생활에서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쉽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표현한다. 왜 그럴까?
언어와 표현은 대개 그 언어가 사용되는 사회의 제반 현상과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미증유의 큰 전란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 한국말이 크게 바뀌고, 된소리도 증가한 것은 아주 좋은 예이다. 그렇다면, 요즘 "다름"을 "틀림"으로 표현하는 세태 또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주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자기하고 조금이라도 다르면 그 상대방을 틀린 놈, 나쁜 놈으로 치부하는 사회...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고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대하는 사회... 그런 풍조를 솔선수범(?)하여 사회적으로 부추기기까지 하는 정치무대 위의 군상들... 다른 의견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 소위 장급 보스들... 그런 보스들이 인왕산 아래에서부터 사회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좌악 포진한 오늘의 현실... 이땅의 오늘...
모처의 기관에서 여당 의원들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내사하고 있다는 폭로를 엊그제부터 접하고 있다. 당연히 TV 긴급뉴스로 나오고 온 나라가 떠들썩해야 할 그런 메가톤급의 폭로인데도 제대로 쟁점조차 되지 않는 오늘의 현실을 보며, 오늘날 이 땅에는 나하고 생각이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참으로 많음을 느낀다. 그래서 몹시 허탄하다.
그래도 그들의 생각을 하나의 "다른" 의견으로 수용하고 존중해야 하는 건가? 일상생활에서 사소하게 다른 것은 대놓고 큰소리로 틀리다고 하면서, 민주시민사회의 기본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정치사찰 같은 극악한 사회 파괴 행위에 대해서는 왜 다들 입을 다물까? 왜 분연히 일어나 그것은 "틀린"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내가 이 사회에서 소수의 "다른" 사림인가? 혹시, 내 생각이 "틀린" 건가? 모든 게 뒤북박죽인, 참으로 숨막히는 세상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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