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이 지난 24일 밤 서울 중구 봉래동 서울역 앞 지하 연결통로 벽앞에서 줄지어 잠을 자거나 휴식을 하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서울역 하루 140명 한뎃잠 “할 일이 없다” 망연자실
인권위, 현장 상담 나서 일자리 대책 권고하기로
인권위, 현장 상담 나서 일자리 대책 권고하기로
24일 밤 10시 서울시 중구 서울역 지하도. 30여명의 노숙인들이 박스에 침낭을 깐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아무개(42)씨는 박스 위에 누워 쪽지에 글을 쓰고 있었다. ‘○○라면, 라면은 원래 이 맛….’ 박스에 적힌 광고 문구를 옮겨 적었다. 김씨는 두 달 전 노숙을 시작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부모님이 하시던 문구점 일을 돕다 신용카드 빚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이 생활에 젖으면 안 되는데…, 할 일이 없다”고 말하고는 계속 끼적였다. 서울역 부근에선 이날 하루 140여명의 노숙인들이 김씨처럼 한뎃잠을 청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인권위는 이날 밤 9시30분부터 11시까지 서울역 안팎의 노숙인들을 상담했다. 앞서 오후 2~5시 사이에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공원을 찾아 상담을 했다. 인권위가 노숙인들을 직접 찾아 현장 상담한 것은 처음이다. 노숙인들은 불만을 토해냈다. 김미숙 인권위 상담원이 이아무개(53)씨에게 “불편한 건 없으세요?”라고 말을 건네자, 이씨는 “신용불량자라 일을 해서 돈을 받아도 따로 둘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달에 15일 정도는 새벽 인력사무소에 나가 일거리를 얻는다. 청소도 하고, 공사장에서 허드렛일도 한다. 일당 6만원을 받아 1만원은 인력사무소에 내고 나머지 돈은 쓴다. 그러나 이렇게 모은 돈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모이지 않는다. 또다른 노숙인 박아무개(46)씨는 “자활로 이어질 수 있는 일자리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3년 전 실직한 뒤 거리로 나온 그는 석달 전부터 특별자활근로를 시작했다. 특별자활근로는 서울시가 마련한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의 하나로, 한달에 15일간 일하면 39만1000원을 준다. 박씨는 새벽 3시30분부터 1시간가량 노숙인들에게 커피와 차를 나눠주고, 한데서 잠자고 있는 노숙인들을 보살피는 일을 한다. 박씨는 “자활근로 일자리가 지속적이지 않아, 일자리가 끊기면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25일 새벽 1시. 서울역 대합실에 있던 80여명의 노숙인들이 우르르 밖으로 빠져나왔다. 대합실 청소가 끝나는 새벽 2시까지는 꼼짝없이 바깥에서 기다려야 한다. 노숙인 강아무개(32)씨는 “올겨울은 너무 추워서, 이 한 시간이 힘들었는데 이젠 따뜻해져서 다행”이라고 했다. 인권위는 노숙인 현장 상담 결과를 바탕으로 노숙인 자활에 관한 정책 권고를 할 계획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들이 단기사업인데다 계절별로 있다가 없다가 하는 등 들쭉날쭉해서 실질적인 자활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일자리-주거의 통합 지원을 통해 실질적 자활이 가능하도록 노숙인 자활 대책을 점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