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새벽 서울 송파구 가락동 롯데슈퍼 개점에 맞서 농성중인 동내 상인들. 허재현 기자
[현장] 가락동 롯데슈퍼 기습 개점
지역 상인들 저지 몸싸움 10여 분 만에 밀려나
롯데쪽 8달 간 협상 ‘담배·종량제 봉투’만 양보
지역 상인들 저지 몸싸움 10여 분 만에 밀려나
롯데쪽 8달 간 협상 ‘담배·종량제 봉투’만 양보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일 새벽 5시 서울 송파구 가락동‘ 롯데슈퍼’ 개점 현장. 기업형 슈퍼마켓(에스에스엠·SSM)인 롯데슈퍼는 이날 개점을 위해 트럭에 싣고온 물품을 기습작전 하듯 820㎡(250여 평) 규모의 매장 안으로 들여놓았다. 이를 눈치챈 지역상인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매장 점거농성이라도 해야 개점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롯데슈퍼 쪽 직원들의 완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팔과 팔을 맞잡아 스크럼을 짜고 있는 사내들의 육중한 몸은 견고한 바리케이드였다. 몸싸움이 벌어진 지 10 여분 만에 30여 명의 상인들은 나가떨어졌다. 쏟아지는 비와 흘러내리는 땀으로 머리칼이 풀어 헤쳐진 한 50대 상인이 억울한 듯 한 직원의 옷깃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우린 다 죽으려고 나왔어. 롯데 책임자 나와.” 허무한 외침만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전국에 기업형 슈퍼마켓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가운데 지역 상인들과 대형 유통업체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급기야 중소기업청의 강제조정 결정 뒤 영업을 개시한 기업형 슈퍼마켓과 지역 상인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다. 지역 상인들은 영업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거나 규탄집회를 여는 등의 행동을 해왔지만 이번처럼 점거농성까지 각오하며 몸싸움을 벌인 것은 처음이다. ‘기업형 슈퍼마켓 저지 송파구 대책위원회’ 이종하 위원장은 “롯데 슈퍼가 사업조정을 신청한 상인들과 제대로 만나지도 않고 무리하게 영업을 강행하려 해 어쩔 수 없이 시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락동 롯데슈퍼 쪽은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2월 22일 중소기업청의 강제조정안을 받아들여 3년간 담배와 종량제 봉투의 판매를 보류하고 영업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까지 제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정원호 롯데슈퍼 마케팅 팀장은 “지난 8개월간 상인들과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했다”며 “더 이상 개점을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가락동 상인들은 롯데슈퍼의 이런 주장에 8개월 간 싸워서 얻은 양보 안이 ‘담배와 종량제 봉투’라는 것이냐며 허탈해하고 있다. 가락동 ‘ㅇ’ 편의점을 운영하는 신현구(34)씨는 “종량제 봉투 마진율은 5%, 담배는 10%에 불과하다. 인건비와 가게 운영비를 제외하면 가게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약하다”며 “이런 수준의 양보 안은 롯데슈퍼의 명분 쌓기용 주장일 뿐이다”고 일축했다. 상인들은 가락동 롯데슈퍼가 영업시간을 밤 10시까지로 결정한 것도 “지역 상인들을 사실상 중노동으로 내모는 양보 안으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가락동 롯데슈퍼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5년째 작은 슈퍼를 운영해오던 이삼순(67)씨는 “수익을 내기 위해 우리 보고 새벽에 문 열고 새벽에 문 닫으라는 소리냐”며 혀를 찼다. 상인들이 무엇보다 걱정하는 것은 직접적인 매출 타격이다. 민주당 김재균 의원이 지난달 24일 공개한 ‘사업조정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면적 66㎡ 이하 소형 점포의 매출 감소폭은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섰을 때 63.4%에 이른다. 가락동 롯데슈퍼 인근에는 매출에 타격을 입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작은 가게들이 매우 많았다. 롯데 슈퍼 주변 500m 안에만 문구점 2개, 제과점 3개, 정육점 3개, 중소형 가게 15개가 영업중에 있었다. 지역 상인들은 이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신씨는 “2007년 은행 빚을 얻어 보증금과 권리금까지 포함해 1억 9천만 원을 투자했는데 이대로 가게 문을 닫을 수 없다”며 “나 자신을 포기하고 몸을 던져 끝까지 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도 “권리금만 7천만 원을 들여 가게를 차렸는데 보증금만 받고 폐업할 위기”라며 “여기서 맞아 죽으나 집에서 굶어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거들었다. 상인들은 무조건 거대 유통업체더러 영업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역의 상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주든지, 정부가 중소상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영업 시작을 멈춰달라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에서 ‘ㅌ’마트를 운영하는 안상구(55)씨는 “정부가 스마트샵(Smart shop·나들가게) 육성책을 발표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라며 “정부가 이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단계인데, 대기업들은 마구잡이로 골목 상권을 장악해 들어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청 자료를 보면 현재 전국적으로 대기업이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은 모두 609곳에 이른다. 기업형 거대자본이 전국의 골목 상권을 잠식하자 골목은 사실상 지역 상인들과 유통업체들의 전쟁터로 돌변했다. ‘기업형 슈퍼마켓 저지 대책위원회’는 전국적으로 약 100여 곳에서 사업조정신청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만 최근 서초동 등 5곳에서 에스에스엠 개장과 관련해 지역 상인들과 유통업체 간 마찰이 있었고, 인천 부개동에선 홈플러스 에스에스엠 입점에 반대해 지난 1월 지역 상인들이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관련법 논의만 무성하다. 현재 ‘에스에스엠 허가제’를 내용으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주승용 조배숙 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위원장 정장선)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처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정부가 “WTO(세계무역기구) 조항에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입장을 명확히 했고, 한나라당은 당론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상인들이 ‘막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입점 저지 투쟁은 기본이고, 단식농성, 고공농성 등도 불사하고 있다. 서울 지역 곳곳에서 ‘소형 슈퍼 연합회’가 속속 결성되고 있고, 지역간 연대투쟁도 활발하다. 이날 가락동 롯데슈퍼 앞으로 몰려온 상인들은 끝내 슈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슈퍼 앞 10m 밖에서 비를 맞은 채 구호를 외치는 것이 전부였다. “대기업은 대기업답게 해외로 나가라. 왜 골목까지 들어와 영세상인들 다 죽이냐.” “롯데슈퍼 골목 장악에 우리 가족 동반 자살한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가락동에 들어선 롯데슈퍼. 허재현 기자
가락동 상인들은 롯데슈퍼의 이런 주장에 8개월 간 싸워서 얻은 양보 안이 ‘담배와 종량제 봉투’라는 것이냐며 허탈해하고 있다. 가락동 ‘ㅇ’ 편의점을 운영하는 신현구(34)씨는 “종량제 봉투 마진율은 5%, 담배는 10%에 불과하다. 인건비와 가게 운영비를 제외하면 가게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약하다”며 “이런 수준의 양보 안은 롯데슈퍼의 명분 쌓기용 주장일 뿐이다”고 일축했다. 상인들은 가락동 롯데슈퍼가 영업시간을 밤 10시까지로 결정한 것도 “지역 상인들을 사실상 중노동으로 내모는 양보 안으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가락동 롯데슈퍼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5년째 작은 슈퍼를 운영해오던 이삼순(67)씨는 “수익을 내기 위해 우리 보고 새벽에 문 열고 새벽에 문 닫으라는 소리냐”며 혀를 찼다. 상인들이 무엇보다 걱정하는 것은 직접적인 매출 타격이다. 민주당 김재균 의원이 지난달 24일 공개한 ‘사업조정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면적 66㎡ 이하 소형 점포의 매출 감소폭은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섰을 때 63.4%에 이른다. 가락동 롯데슈퍼 인근에는 매출에 타격을 입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작은 가게들이 매우 많았다. 롯데 슈퍼 주변 500m 안에만 문구점 2개, 제과점 3개, 정육점 3개, 중소형 가게 15개가 영업중에 있었다. 지역 상인들은 이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신씨는 “2007년 은행 빚을 얻어 보증금과 권리금까지 포함해 1억 9천만 원을 투자했는데 이대로 가게 문을 닫을 수 없다”며 “나 자신을 포기하고 몸을 던져 끝까지 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도 “권리금만 7천만 원을 들여 가게를 차렸는데 보증금만 받고 폐업할 위기”라며 “여기서 맞아 죽으나 집에서 굶어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거들었다. 상인들은 무조건 거대 유통업체더러 영업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역의 상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주든지, 정부가 중소상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영업 시작을 멈춰달라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에서 ‘ㅌ’마트를 운영하는 안상구(55)씨는 “정부가 스마트샵(Smart shop·나들가게) 육성책을 발표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라며 “정부가 이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단계인데, 대기업들은 마구잡이로 골목 상권을 장악해 들어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청 자료를 보면 현재 전국적으로 대기업이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은 모두 609곳에 이른다. 기업형 거대자본이 전국의 골목 상권을 잠식하자 골목은 사실상 지역 상인들과 유통업체들의 전쟁터로 돌변했다. ‘기업형 슈퍼마켓 저지 대책위원회’는 전국적으로 약 100여 곳에서 사업조정신청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만 최근 서초동 등 5곳에서 에스에스엠 개장과 관련해 지역 상인들과 유통업체 간 마찰이 있었고, 인천 부개동에선 홈플러스 에스에스엠 입점에 반대해 지난 1월 지역 상인들이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관련법 논의만 무성하다. 현재 ‘에스에스엠 허가제’를 내용으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주승용 조배숙 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위원장 정장선)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처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정부가 “WTO(세계무역기구) 조항에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입장을 명확히 했고, 한나라당은 당론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상인들이 ‘막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입점 저지 투쟁은 기본이고, 단식농성, 고공농성 등도 불사하고 있다. 서울 지역 곳곳에서 ‘소형 슈퍼 연합회’가 속속 결성되고 있고, 지역간 연대투쟁도 활발하다. 이날 가락동 롯데슈퍼 앞으로 몰려온 상인들은 끝내 슈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슈퍼 앞 10m 밖에서 비를 맞은 채 구호를 외치는 것이 전부였다. “대기업은 대기업답게 해외로 나가라. 왜 골목까지 들어와 영세상인들 다 죽이냐.” “롯데슈퍼 골목 장악에 우리 가족 동반 자살한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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