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주변의 동료 몇 분이 자녀들 입학식에 다녀온 얘기를 전해준다. 중학교 입학, 고등학교 입학... 나는 일찍 결혼해 두 아이가 벌써 사회초년생과 대학생이고, 또한 그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교복을 입어 본 적이 없다.
나는 젊을 때 7년간 고등학교 선생을 했었지만, 마침 그때는 전두환-노태우 때라, 역시 교복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금 교복이 온 나라에 물결치니, 기분이 야릇하다.
며칠 전에 어떤 공식 간담회에 참석한 후에 관계자들과 점심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의주로 소재 어떤 곳에서 간담회를 하고는, 경찰청 건너편 블록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을 나누었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나와서 그런지, 경찰청 근처 의주로 일대에는 직장인들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길 건너 식당으로 가기 위해 경찰청 앞 횡단보도에 서서 기다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복장이 두드러지게 눈에 뜨일 것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 것에까지 생각이 미칠 수 없었던 게... 함께 서서 기다리는 분들과 계속해서 간담회 내용에 대해 의견을 나누느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란불이 들어와 차도로 발을 내딛고 걸어가면서, 나는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남자들은 거의 다 아래 위 싱글 양복을 입었는데, 하나같이 짙은 색이었다. 짙은 색 중에서도 검정색 내지는 그렇게 보이는 색이 주종을 이루었다.
또한 대개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쏠리듯 차도로 내려서 걷는 인파 중에 딱 한 명만, 상의를 안 입었는데, 그 남자도 역시 짙은 색 바지, 흰색 남방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여자들은 한결같이 무릎 가까이 내려오는 (미니스커트가 아닌) 치마와 그에 어울리는 상의를 입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짙은 색 투피스 정장 차림이었다.
혹시 다른 색상이 있을까 두리번거리기까지 해 보았으나, 내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면 내 복장은? ... 밝은 베이지색 면바지에 짙은 하늘색 남방을 입었고, 짙은 남색의 캐쥬얼 면 양복을 상의로 걸쳤다. 단추는 채우지 않았으며,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더우기 모두 물빨래하는 면이다 보니, 바지와 상의 모두 구겨진 상태였다. 상의는 색상도 약간 바랜 상태였다. 그래도 시내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 차 평소와는 달리 제법 차려입은 의상이었다. 그런데 평일 점심시간 의주로의 넓디 넓은 횡단보도에서 나는 왠지 모르게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3년 전 여름에 서울에 잠시 들어왔을 때, 내가 출근 차 타던 버스는 여의도를 통과하는 노선이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뇌리를 다시 때렸다. 그때도 나는 아침 출근길 여의도의 풍경에 놀란 바 있다. 왜냐하면, 모든 남자들은 한결같이 짙은 색 바지에 흰 반팔 남방, 속옷 상의(난닝구/러닝셔츠)도 죄다 흰색으로 남방에 살짝 비쳐 보이는 것까지 서로 같았다. 또한 거의 모두 짙은 색의 손가방을 들고 있었다.
민주사회의 생명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로 다양성을 꼽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의 다양함만이 아니라, 생각이나 의견에도 다양함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성>의 반대어는 <획일성>일 텐데, 우리사회는 현재 얼마나 다양한 사회일까? 아직도 <국론통일>을 외치는 분들이 주위에 많은 걸 보면, 아마도 획일을 미덕으로 여기고, 남과 다른 걸 백안시하고 적대시하던 옛 문화의 유풍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약 7년 전에 잠시 한국을 방문하면서 폴란드인과 함께 동행한 적이 있었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서울로 들어오는데, 그 친구가 문득 "한국은 혹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냐?"고 진담반 농담반으로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했더니, 손가락으로 강변의 아파트들을 가리키며, 직육면체의 똑같은 색상 똑같은 크기의 아파트들이 즐비하니, 마치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의 잔상이 다시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 법 했다. 특히 아파트라는 게 1950년대에 동구에서부터 시작된 새로운 주거용 건축 양식이니, 그 친구의 눈에는 당연히 그렇게 비칠 만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 질문에 동감을 표하면서, 1970-80년대 한국은 사실상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일 수도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다양한 모습의 아파트들이 생겨났지만, 그래도 70, 80, 90년대의 확일적인 15층 아파트는 지금도 서울 도처에 널려있어, 외국인들의 흥미를 자아낸다. 교복 착용 여부를 학교장 재량에 맡겼더니, 개나 소나 모두 교복을 부활시켰다. 두발 자율화를 해 주었더니, 역시 학교장 재량으로 개나 소나 규제를 가한다. 학교의 규제에서 벗어나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으나, 획일과 일률을 강조하는 일터의 분위기에 눌려 다시금 유니폼 아닌 유니폼을 입고 다닌다. 복장의 자유는커녕, 그나마 요즘엔 일터에서 숨조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자꾸 늘어만 간다.
유니폼 사회는 숨막히는 사회다. 이 땅에서는 무슨 자율화를 한다고 해도, 그 당사자들은 여전히 아무런 힘이 없다. 우두머리 관리자들을 위한 자율화만 있는 듯하다. 왜 그럴까? 그건 바로 우리는 한 번도 스스로의 힘으로 제대로 된 자을을 쟁취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통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통제, 눈에는 안 보이지만 피부를 파고 드는 통제... 저 멀리 보이는 통제, 저인망 식의 처절한 통제...
국가 차원의 정치적 획일화는 군사정권의 종말과 함께 많이 풀렸으나, 예로부터 겹겹이 쌓인 획일과 통제는 여전히 이 땅을 짓누르는 듯하다. 민주화의 여정은 왜 이다지도 아득히 멀까? 손을 뻗으면 바로 잡힐듯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정치적 하드웨어만 민주사회인 양 만들었다고,민주화의 여정이 끝난 것일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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