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가르친 이인자 교수 “삶의 가치 찾는 참선행위”
아마추어 작가 실력 능가..“언젠가 개인전 열었으면”
아마추어 작가 실력 능가..“언젠가 개인전 열었으면”
2004년 봄, 이인자(70) 경기대 명예 교수는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법당에서 만난 ‘사형수’ 이규상(42)씨에게 “계란을 100개만 그리자”고 제안했다. 죽음의 그림자를 곁에 두고 사는 사형수에게 ‘계란 100개 그리기’라니…. 하지만 이씨는 헛웃음을 치지 않았다.
이씨는 그 당시 종이에 아무 그림이나 끼적이기를 좋아했다. 그는 지난 2000년 살인죄로 사형이 확정돼 4년째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때마침 초대 불교여성개발원장이던 이 교수가 사형수 교화를 위해 ‘최고수’(사형수를 달리 부르는 말) 5명이 있던 서울구치소를 찾았다. 이씨는 이 교수가 미술을 전공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따로 만나기를 청해 “그림을 가르쳐 줄 수 없냐”고 물었다.
이 교수는 “엉터리로 할 거면 하지 마라. 백지처럼, 초등학생처럼 선 긋는 것부터 할 마음이 있냐”고 거듭 다짐을 받았다. 또 절망에 빠진 그의 눈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일생을 그림으로 정진한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하라”고 했다.
‘계란 그리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가로, 세로, 대각선…. 흑심으로 된 연필에서 다양한 색을 찾아낼 때까지 선긋기가 계속됐다. 이내 계란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3일 <한겨레>와 만난 이 교수에게 왜 ‘계란’인지를 물었다. “미묘한 광선의 변화까지 관찰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계란만한 것이 없어요. 삶의 가치를 찾아내는 참선과도 통하는 작업입니다.”
한달에 한 차례씩 만나온 인연이 6년 남짓 이어지면서, 계란 그림도 쌓여갔다. 신문 종이만한 크기의 백지에 어떤 때는 한개를, 때로는 수십개를 그려넣은 게 연필화로만 80여장에 이른다.
이 교수는 “지난해 가을께 크게 도약을 하더니, 이젠 아마추어 작가 이상의 실력을 갖췄다”며 “빛과 어둠을 다루면서 삶이 왜 아름다운지를 깨닫고, 사는 동안 인내와 참회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과 함께 이씨의 태도도 변해갔다. “모범수만 그림 배우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만큼, 행여나 걸림돌이 될까 싶어 남아있던 ‘습’(습관)을 누르는 게 눈에 보이더군요.” 지난 1월에는 여러 해 모은 영치금 300만원을 사형수 교화승인 박삼중 스님(부산 자비사)을 통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당시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에는 “다시는 저와 같은 사람이 없기 바란다”는 바람도 적었다.
“(이)규상씨가 구치소 안에서라도 언젠가 그림전을 열어본다는 꿈을 갖고 있어요. 그때는 꼭 ‘희생된 ○○님에게 이 그림을 바칩니다’라고 적어 희생자 가족과 스스로에게 뼈저린 참회의 뜻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이 교수는 요즘 틈틈이 이씨에게 색채를 가르친다고 한다. “색채를 배우면 빨간, 노란 꽃이 왜 아름다운지를 알게 됩니다. 모든 삶이 왜 소중한지, 왜 스스로 참회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깨닫게 될 겁니다.” 글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사진·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이)규상씨가 구치소 안에서라도 언젠가 그림전을 열어본다는 꿈을 갖고 있어요. 그때는 꼭 ‘희생된 ○○님에게 이 그림을 바칩니다’라고 적어 희생자 가족과 스스로에게 뼈저린 참회의 뜻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이 교수는 요즘 틈틈이 이씨에게 색채를 가르친다고 한다. “색채를 배우면 빨간, 노란 꽃이 왜 아름다운지를 알게 됩니다. 모든 삶이 왜 소중한지, 왜 스스로 참회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깨닫게 될 겁니다.” 글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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