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고문 스트레스가 발병요인’ 인정
“5공 아람회 사건 20억 추가배상하라”
“5공 아람회 사건 20억 추가배상하라”
수사기관의 고문에 의한 스트레스가 당뇨병 등 질병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직접적 상해뿐 아니라 고문 후유증에 대한 폭넓은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다.
서울고법 민사11부(재판장 김문석)는 1980년대 조작사건인 ‘아람회 사건’ 연루자들과 유족 등 3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보다 20여억원 늘어난 206억원을 배상하라고 9일 판결했다. 배상금에는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에, 배상이 늦어진 데 대한 지연손해금이 포함됐다.
이번 항소심에서는 당뇨 합병증으로 1998년 숨진 이재권씨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1심에서 언급되지 않은 이씨의 질병과 고문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하면서 “불법구금 기간 동안 고문 등으로 인해 급성 당뇨병을 앓게 됐고, 석방 뒤 합병증에 시달리다 부모보다 먼저 사망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1심이 16억1000만원으로 산정한 이씨에 대한 배상액을 23억5000만원으로 늘렸다. 이씨는 항소심에서 질병과 고문의 인과관계를 설명한 의사 소견서와 논문을 내기도 했다. 의사들은 이씨에 대해 “심한 고문과 강요된 자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성적으로 지속돼 특별한 발병 요인이 없던 26세의 젊은이가 당뇨에 걸렸고 병도 빠르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사건 뒤 대장암 등을 앓고 있다고 주장한 김현칠씨의 배상액도 16억1000만원에서 23억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재판부는 한편, 1심 배상 판결에 대한 국가의 항소는 기각하면서 ‘지연손해금을 불법행위 종료일부터 계산하면 과잉배상이 된다’는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회복할 수 없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계속 발생될 것이 불법행위 당시 충분히 예상되는 경우 그 점까지 감안해 배상금을 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위자료 산정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1983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지연손해금도 그에 따르는 게 이중배상이나 과잉배상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가는 과거사 배상 소송에서 지연손해금을 재심 무죄 선고나 민사소송 제기 시점부터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 유족들이 받을 배상액을 그에 맞춰 산정한 바 있다.
아람회 사건은 1981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신군부의 탄압을 알리려던 이들이 계엄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으로 몰린 사건이다. 피해자들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재심을 청구해 지난해 무죄·면소 판결을 받고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