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코트디부아르 담당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취임 3년째인 최영진 코트디부아르 유엔 특별대표
“코트디부아르는 많은 동정과 애착이 갑니다. 우리와 같은 비극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남북 간 대규모 군사 충돌과 민간인 대량 학살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5일 서부 아프리카 국가인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 해안가에 있는 유엔평화유지군 본부에서 만난 최영진(사진) 코트디부아르 담당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사무차장급)는 자신의 임무에 남다른 애정을 표시했다. 웬만해선 약속을 잡기 힘들 정도로 바쁘다고 알려진 그는 ‘한국 손님’의 갑작스런 방문을 반갑게 맞았다. 동아시아인 첫 아프리카 분쟁지 수장
“점령군이라는 인상 주지 않으려 노력” 그는 2007년 10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의해 동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 분쟁지역의 특별대표로 임명됐다. ‘상아 해안’으로 잘 알려진 코트디부아르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정치·경제적으로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며 서부 아프리카의 중심 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2002년 쿠데타, 2004년 정부군과 북부 반군의 무력충돌 등으로 국토가 남북으로 쪼개지고 2000명 안팎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급기야 유엔은 2004년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다. 최 특별대표의 최종 임무는 ‘평화적 대통령 선거를 통한 민주질서 회복’이다. 이를 위해 그는 평화유지군 8000명뿐 아니라 유엔개발계획, 유니세프 등 코트디부아르에 있는 모든 유엔사무소의 업무를 총괄 지휘한다. 게다가 코트디부아르에 주둔하는 프랑스군 1000명에 대한 특별지휘권도 갖고 있다. 이런 막강한 권한 때문에 한국의 일부 사람들은 그를 ‘총독’에 비유한다고 전하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점령군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실제 그의 전임자였던 다른 유엔 특별대표들은 총리 임명 등에 관여하면서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현 집권세력과 자주 충돌하는 바람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일이 잦았다. “서양식 접근으로는 선거나 민주화가 우선이지만, 저는 내전 중 파괴된 학교를 재건하고 교육사업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접근했습니다. 종전 뒤 쏟아져나온 퇴역 군인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차장이나 양어장, 양돈장, 양계장 등을 우선사업으로 선정해 이들에게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도 펼쳤습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제가 처음 왔을 때 유엔군에 주먹질을 해 보이던 주민들이 지금은 손을 흔듭니다.”
여당, 야당, 반군 등으로 복잡하게 갈라진 코트디부아르의 정치세력들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 ‘비법’을 묻자, “모두에게 잘해야 한다”면서도 “(최 특별대표를) 서로 자기 편으로 삼고 싶어 하기 때문에 소문이 많고, 그래서 내가 직접 하거나 공개적으로 한 얘기 이외는 믿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그는 한국인, 더 나아가 동아시아인 최초로 유엔의 특별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크게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며 “일의 성과가 나오는 걸 보면서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아비장/글·사진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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