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구에만 살아 지형에 밝고 재개발지역이라 ‘은둔 용이’
낮엔 빈집 밤엔 시장서 음식훔쳐서 생활한듯…범행 부인
낮엔 빈집 밤엔 시장서 음식훔쳐서 생활한듯…범행 부인
부산의 13살 소녀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씨는 그동안 경찰의 대대적인 수색 속에서도 범행장소 주변인 사상구 덕포동 재개발지역 일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숨어 지내온 것으로 드러났다.
■ 검거 순간 김씨는 10일 오후 사상구 ㅎ빌라 3층 건물 옥상에 숨어 있다 수색중이던 경찰기동대원들이 옥상 문을 여는 순간 경찰과 처음 마주쳤다. 김씨를 본 기동대원들이 “길태다”라고 소리를 지르자 김씨는 옆 빌라 건물 옥상으로 두차례나 뛰어넘다 빌라와 빌라 사이 50㎝의 좁은 틈 사이의 벽을 등과 발을 이용해 타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김씨는 지상으로 내려가서도 태연하게 걸어서 지상주차장 쪽으로 걸어 나왔으며, 이곳에서 순찰중이던 사하경찰서 강희정 경사와 눈이 마주치자 달아났다. 이어 근처에 있던 이용훈 경사와 다시 맞닥뜨렸다. 그러자 그는 날쌔게 이 경사의 얼굴을 후려쳐 쓰러뜨린 뒤 다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계속 그를 쫓아온 강 경사에게 덜미를 잡혔다. 맞은편에 있던 사하경찰서 경찰 2명도 뛰어들어 가세했다. 당시 김씨는 회색 후드티, 검은색 점퍼 차림에 파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장발에다 얼굴은 마르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경찰은 이날 덕포시장에서 음식물이 자주 없어진다는 신고를 받고 검거팀을 집중 투입해 포위망을 압축해 가던 중 김씨를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 어디서 뭘 했나 김씨는 이양을 살해한 뒤 경찰의 수색망을 피해 낮에는 주택가 빈집 등에 숨어 있다, 밤이면 시장골목이나 구멍가게 등으로 옮겨 다니며 음식물과 담배 등을 훔쳐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사상경찰서 앞에서 그는 도피 행적에 대한 취재진의 물음에 “빈집에서 라면만 끓여 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일 새벽 5시께 이양의 집에서 20여m 떨어진 빈집에서 잠을 자다가 경찰 수색팀에게 들키자 창문을 통해 담장 3.5m 아래로 뛰어내려 달아나는 등 3차례나 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다. 그가 이렇게 이양을 납치한 지 보름이 지나도록 경찰을 따돌릴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부터 교도소 수감 기간을 빼곤 줄곧 덕포동을 중심으로 한 사상구 일대에서 살아, 이 일대 지형 특성에 대해 경찰보다 더 밝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사 관계자는 특히 “피의자는 휴대전화 없이 필요할 때에는 공중전화를 이용했으며, 폐쇄회로 텔레비전이 없는 좁은 골목길로만 다녔다”며 “달아날 때도 담장과 건물 옥상 사이를 쉽게 이동할 만큼 행동이 재빨라 추격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 수사 방향 김씨의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김씨의 진술 여부에 따라 경찰의 허술한 수사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관련 경찰관들의 징계가 잇따를 것으로 보여 김씨의 입에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인원 2만여명을 동원하고도 지난 보름간 사건 현장에서 반경 300m를 벗어나지 않은 곳에 있던 김씨를 일찍 검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씨가 도주 경로를 상세히 밝히는 순간, 그 동선을 담당했던 경찰관들의 문책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이양을 살해해 유기한 시점도 파장을 낳을 수 있다. 살해 시점이 경찰의 공개수사 전환(2월27일), 김씨 공개수배(3월2일), 김씨로 추정되는 용의자 검거 실패(3월3일) 이후가 되면 경찰의 섣부른 공개수사와 허술한 검거작전에 대한 책임 문제가 거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이날 이양의 부검의사인 부산대 법의학연구소 조갑래 박사에게 이양의 사망 추정시간 감정을 맡겼으나 “부패성 오염으로 인해 검사를 할 수 없어 사망 추정시간을 알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부산/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일지
부산/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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